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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미완의 꿈 / 김규련

미완의 꿈 / 김규련


 

 

나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다.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도 이 꿈만은 버릴 수 없다. 이 꿈이 나의 신앙이요, 기도요, 생명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아오다 황혼 붉게 타오르는 광야의 끝자락에 이르면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간절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요동 없이 한길로 나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목숨 이어 갈 최소한의 조건만 남겨두고 죄다 버릴 것이다. 사랑도 미움도 놓아 버릴 것이다. 성냄도 탐욕도 벗어 버릴 것이다. 달고, 쥐고, 품고 있는 명예며 권위며 자존심마저도 내려놓을 것이다.

언제나 팍팍하고 절절한 이승을 살면서도 그때 그때 당하는 처지에 따라 머물고, 집착하는 바 없이 그 마음 내놓으며 희로애락 즐길 터이다.

나 같은 촌로야 그저 알뜰한 소망의 등불 하나 가슴에 달고 그냥 사는 대로 살아낼 뿐이다.

자연 따라 무심히 이승에 왔으니 자연 따라 살다가 자연 따라 무심히 가면 될 터. 간다고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으리라.

이렇게 살면 때 묻고 상처 입고 부서진 영성(靈性)이 어린애 때처럼 복원될지도 모른다. 영혼의 창이 열리고 온몸의 기공도 뚫려서 우주의 맑고 깨끗한 진기(眞氣)가 몸속에 스며들고 탁기(濁氣)가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유유히 떠 흐르는 구름처럼 가벼워지지 않을까. 지상의 모든 존재들과 소통의 길이 조금씩 열린 터이다.

나는 여태껏 40여 년 동안 수필을 쓴답시고 온갖 잡문을 끄적거려 왔다. 어쩌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도 있지만 아직 내 마음에 흡족한 수필은 한 편도 남기지 못했다.

나의 간곡한 꿈은 내 심혼에 딱 들어와 닿는 수필 두어 편 창작해 봤으면 하는 것이다.

햇빛과 바람과 산이며 몸의 언어로 문인화 같은 수필을 써 보고 싶다고 할까.

문인화는 그림인가 하면 시이고 시인가 하면 서이다. 문인화에는 순백의 미학이 있고 서릿발 같은 고절이 숨어 있는가 하면 동매(冬梅)의 암향이 묻어나기도 한다.

꽃은 꿈과 향기로 벌, 나비를 불러들인다. 내 수필의 서두도 낯설고 잘박하고 참신한 언어로 독자의 눈길을 꽉 붙들 수 있어야 하겠다.

문체의 은은한 향기에 취해 독자의 마음이 글 속에 빨려 들어와야 하리라. 읽어 갈수록 은유며 해학이며, 역설과 기지에 매료되어 흥미진진함을 느끼도록 해야겠다.

때로는 구상의 씨줄과 날줄이 교직되면서 신비한 모자이크 무늬가 떠오르면 좋겠다. 또한 독자가 읽다가 밑줄 그으며 암기하고 싶은 명언 두어 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그뿐이랴. 여기저기 보석처럼 빛나는 어휘 서너 개 쯤 깊은 뜻 함축하고 석류 알처럼 박혀 있어야 하리라.

독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잔잔한 감동으로 그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야 하리라. 여항의 숨은 인정에 눈을 뜨고 작은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있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문장의 행간에는 무지개가 뜨고 예지의 별빛이 빛나야 하리라. 뿐만 아니라 문사의 지조도 엿보이고 사상과 철학의 강물도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수필 한 편을 다 읽어 갈 무렵에는 그 수필의 주제가 수묵화의 취운(吹雲)처럼 번져 나오리라.

수필의 결미는 용 그림의 눈동자에 점을 찍으면 용이 살아나 꿈틀거리며 비천하듯 지금껏 빚어낸 문장이 살아서 빛을 발하는 글귀로 끝맺음 하리라.

독자가 내 수필 한 편 읽고 작품을 손에 쥔 채 한동안 먼 하늘 보며 뭣인가 생각에 잠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필 한 편에 아무리 묘사가 뛰어나고 문장이 훌륭하며 밤 호수에 달뜨듯이 주제가 잘 드러나도 그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녹고 삭아 흘러들지 않으면 그 작품은 언제나 미완이요, 미달이요 이급이라 여길 것이다.

나의 이 끔이 이뤄질 때까지 결코 펜을 놓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