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마음 변하면 또 떠나겠지만 / 정호경
아파트 창틀에 붙어 울고 있는 매미를 잡으려고 등에 손을 가까이 대니까 오줌을 찍 싸고 날아가 버립니다. 자기만 오줌 쌀 줄 아나. 어렸을 적 이야기가 아니고 엊그제 있었던 일입니다. 돌산 ‘승월마을’에 가보니 접시꽃도 호박꽃도 그리고 채송화도 피어 있었습니다. 마을 골목에서 만난 늙은 개는 나를 보고도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세상이 귀찮은가 봅니다. 개는 늙어도 평생을 살아온 이 마을에 경로당이 없습니다.
집 앞에 보이는 섬 경도의 저 유명한 갯장어 ‘샤브샤브’집의 환한 불빛도 꺼지고, 밤도 잠이 든 원초의 적막 속에 바다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수많은 갯장어들의 영혼이 떼를 지어 몰려와 우는 소리였습니다. 아침에 거실 소파에 앉아 어젯밤 그 놈들의 슬피 울던 영혼을 생각하며 앉아 있는데, 6․25 때 귀에 익은 따발총 소리에 놀라 두리번거렸더니 다용도실 세탁기 속의 어디에 내 오래된 ‘난닝구’ 소매가 걸렸는지 멧돼지 잡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 서 있던 집사람의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곳 병원에서는 수시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네요. 즐거운 병원 마당입니다. 음악은 빗속에서도 좋고, 뇌성이 우는 속에서는 또한 베토벤의 ‘운명’을 연상케 하는 장엄한 음악마당이 될 것입니다. 노래는 좋을 때나 궂을 때나 팍팍한 우리의 삶에 맛을 만들어 주는 양념 아닌가요. 그래서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종일 부엌에 앉아 손가락 끝이 갈라지도록 마늘을 까면서도 시집살이 운명 같은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태풍에 해도 어디론가 쓸려 가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 아침 모처럼 아파트 창가에서 환한 얼굴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해든 사람이든 오래 못 만나면 보고 싶습니다. 살기가 어려워 은행 빚이 많은 사람들끼리 서로 따뜻이 손 한번 잡아 줍시다. 그러면 우리는 새삼 해 뜨는 세상에 사는 보람과 서로의 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태풍 전야 못지않게 세찬 바람이 집을 흔듭니다. 남은 바람이 설거지를 하느라 그런가요. 언제나 꼭 같은 차례가 지겨웠던지 하느님이 새 맛으로 앞뒤 순서를 한번 바꿔본 모양입니다. 밤에는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꽝 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 얼른 파리채를 찾아 들고 거실로 나와 도둑을 찾았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고, 더워서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통바람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도둑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수탉이 행패를 부린다고요. 언제 우리 만나는 날, 그 늙은 수탉을 잡아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그 녀석이 평생을 함께한 조강지처를 구박하고, 새로 들어온 새댁한테만 정신이 팔려 있다니 사람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그 늙은 수탉은 요즘 심심하면 TV광고에 나와 떠드는 어떤 남자의 산수유 기운을 좀 얻었을까요.
빗물은 한자로는 ‘雨水’인데, 우리는 그런 날 또한 같은 독음의 다른 ‘憂愁‘에 젖기도 합니다. 뒷산도 앞바다도 청전(靑田)의 그림처럼 뿌연 안개에 젖어 있네요. 어젯밤에 먼 바다로 나간 고깃배들이 아침에 통통거리며 포구의 선창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안개 자욱한 유리창을 통해 비 내리는 포구의 정겨운 그림엽서를 보고 있습니다.
여수에는 해수욕장도 많지만, 새로 생긴 웅천 인공해수욕장은 여수 도심 가까이에 있어서 사철 산책객이 찾아가는, 공원 같은 곳입니다. 바로 옆에는 문화예술 공연장인 ‘예울마루’가 있고, 신축 아파트도 계속 들어서고 있어요. 우리 집에서는 가까운 곳이어서 무료하면 종종 바람 쐬러 가는 곳입니다. 바닷가 빌딩에는 젊은이들의 커피숍이 늘어서 있는데, 여름 뭉게구름 같은,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비싼 커피만 팔고 내가 좋아하는 다방커피는 팔지 않습니다. 그 옆집 현관 입구에는 '낮술환영'이라는, 색다른 딱지도 붙어 있네요. 무서운 마누라 얼굴을 떠올리며 숨을 죽이지 말고, 들어가 마음 놓고 낮술 한 잔 하고 가세요.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골목‘을 ’골묵‘으로, ’먹고‘를 ’묵고’로 오타한 것은 내 어렸을 적 고향의 어벙한 떠돌이 ’골묵개‘와의 깊은 정 때문입니다. 운명적인, 이런 정에는 표준말도 힘을 못 씁니다. 이들과 함께 내 몸에 봉숭아꽃물처럼 곱게 물들어 있는 고향 사투리는 내 문학적 정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고향 산소에 집사람과 함께 성묘 갔다 왔습니다.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고, 백일홍은 끝물의 꽃잎 몇 개만 남아 붙어 있었습니다. 산소로 오르는 나는 숨이 차고, 무릎이 한두 번 시큰 하는 정도였지만, 집사람은 허리가 아파 엎드려 절을 하기도 힘들었는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고향의 푸른 하늘은 예와 다름없는데, 내 구두는 왜 이렇게 자꾸 헐떡이는지요.
뒷산의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안 들리기에 그의 친정에 다니러 갔나 하고 마음이 허전했는데, 오늘 해거름에 모처럼 그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나 사람이나 다시 만나는 반가움은 다를 바 없습니다. 함께 지내다 떠난 뒷자리는 앞니가 빠진 듯 허전합니다. 언제고 마음 변하면 또 떠나겠지만, 뒷산의 산비둘기가 다시 돌아와 주어서 정말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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