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 김상환
눈보라 삼동을 견딘 풋보리가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온 들녘에 파릇파릇 생기를 불어 넣으며 봄은 우리 곁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유년의 봄은 우리에게 보리밭 밟기와 지긋지긋한 김매기로 무리한 노동을 강요했고,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이 밥상 위에 올라오면 보기조차 지겹고 싫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리밥이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예로부터 보리는 콩과 더불어 우리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양식품이다. 옛날 머슴들이 찬물에 말은 보리밥 한 그릇을 된장, 고추장에 풋고추 꾹 찍어 먹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 한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들은 튼튼한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그 힘든 노동을 해낸 것으로 보면 과연 보리밥이 금메달감 우수식단이기는 한가 보다.
오늘따라 고향 산등성이 다랑이 밭에 떼거리로 구불구불 기어가는 풋보리밭 이랑이 녹색 띠 줄을 두른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나의 유년의 동산에 진달래 꽃 한 아름안고 뛰어 놀던 모습과 겹친 흑백 영상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 그립다. 보리밭! 얼마만이냐.
어릴 적 어른들의 말씀에 무더운 한여름 어둔 밤 간난 애기를 마당에 뉘어놓고 부채를 살랑 살랑 부치다가 목이 말라 잠시 부엌에 갔다 오면 늑대가 애기를 감쪽같이 물어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는 늑대를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항상 무서운 짐승으로 여기며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혼자 하굣길 고개를 넘다가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서 누런 늑대 한마리가 나를 획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고갯길을 도로 내려 와 큰 길로 빙 둘러 집으로 온 경험이 있다.
이 무렵 닭서리를 하다가 들켜 닭 값 때문에 시달린 적이 있다. 하굣길 산모롱이나 언덕바지에 숨어 벼르고 있다가 보리밭의 늑대처럼 나타난 인간 늑대 때문에 혼이 났었다. 요즘 늑대는 영원히 사라졌는가 싶었는데 인간 늑대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내도 계속 생겨나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가보다. 산골마을, 오뉴월 봄이 무르익어가고 풋보리가 듬성듬성 패기 시작할 무렵, 두 살 아래 동생과 나는 소꼴을 베기 위하여 우리 밭이 있는 안산으로 갔다. 우리가 봄바람에 일렁이는 밭고랑에 들어서면 파도치는 물결에 헤엄치듯 허우적거렸고, 바래이. 속세, 줄, 방동사니, 골풀, 쑥, 토끼풀, 쇠비름, 냉이, 씀바귀 등 풀을 뽑기 위하여 엎드리면 물장구치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언제 왔는지 동생과 한 학년인 이웃집의 박자라는 계집아이가 망태를 메고 소꼴을 베러 왔다. 셋이서 숨바꼭질 하듯이 밭둑과 밭고랑을 누비면서 한참 풀을 베다가 꼴망태가 얼추 채워지고 해가 질 무렵 허리를 폈다. 그런데 보리밭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동생이 보이지 않았고, 높은 밭둑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아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해는 저물고 머잖은 곳에서 늑대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할 수 없이 집에 와보니 동생은 벌써 집에 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보리가 익어 갈 무렵의 추억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흑백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고을마다 며칠간 선전하며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던 것인지 남녀노소 부나비처럼 면소재지로 모여 들었다.
집이 면사무소 옆집인 나는 누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활동사진이 돌아가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였고 영화가 끝나면 번호를 추첨하여 경품도 주었다. 경품 추첨에 60번인 누나의 번호가 1등에 당첨되어 양은 다라이를 받게 되었으나 누나가 집에 가고 없어 받지 못했다. 가더라도 번호표는 나에게 주고 가야 했는데 그냥 가버려 무척 서운했다. 영화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누나는 자기 번호가 1등에 당첨된 줄도 모르고 콜콜 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어제 왜 일찍 왔느냐? 하고 물어보니, 영화 구경을 하는데 자석아들이 뒤에서 댕기머리를 자꾸 잡아당기며 귀찮게 굴기에 속이 상해서 일찍 집에 와 버렸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 10여리씩 처녀총각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뭉쳐 돌아가는 어두운 시골 산길에는 더러 길 잃은 양떼처럼 뒤처져 낙오된 젊은이들도 간혹 있었던 것 같다. 때를 만난 듯 젊은이들은 영화구경보다는 삼삼오오 처녀총각이 몰려다니는 날에는 온 동네가 밤새도록 시끌벅적했다.
그런 날 다음 아침이면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과수원주변의 보리밭 여기저기에 널린 가마니를 지게에 한 짐씩 짊어지고 오셨다. 젊은이들이 보리밭을 망가뜨렸다고 겉으론 못마땅해 했지만, 생각지도 않은 가마니가 절로 굴러들어 왔기 때문에 내심 영화 상영하는 날을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비록 넝마 같은 삼베옷에 헐벗고 배는 곯았지만 또래들과 버들가지 꺾어들고 보리피리 불면서 산과 들 푸른 초원을 누비며 신나게 뛰어놀았던 게 참 재미있었다. 이젠 종달새 지지배배 높이 떠 노래 부르며 거꾸로 처박히던 보리밭 풍경은 이국에서나 볼 수 있을런가.
나는 지금 유년의 보리밭에서 뛰어놀던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문학의 푸른 보리밭을 가꾸어 나가고 싶다.
오늘 따라 남매를 남기고 반백년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난 동생이 가슴 미어지도록 그립다. 그와 함께 봄바람 일렁이는 보리밭에서 장난을 치며 소꼴을 뜯던 보리밭 둑길을 이리저리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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