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 박경대
아내의 전화를 받고나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주차장으로 잠시 나와 보라는 말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는 패잔병처럼 서 있었다. 트렁크가 반쯤 접혀지고 뚜껑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자태가 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내는 멀쩡하게 보였지만 다친 곳이 없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와중에도 안부를 묻지 않으면 섭섭하다며 두고두고 몰아세울 것이 분명했다. 일주일 전에 출고되어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차에게 대단한 신고식을 치르게 한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아내는 한 번 만에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여 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운전면허를 내 주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
면허증을 받은 다음날 열쇠를 하나 복사해 달라고 하였다. 그저 기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처럼 차를 사 달라고 하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나로서는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었다.
다음날, 말로는 해봐야 밀릴 것이 뻔한 일이라 열쇠는 주되 조건을 달았다. 그것은 나의 연수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부부간에는 운전연수를 하지 말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보다 더 완벽하게 가르쳐줄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첫날부터 싸움은 시작되었다. 연수도중에 싸워 따로 집에 온 일이 두어 번 있었고, 심각한 말까지 오간 경우도 있었다. 싸움의 원인은 주로 방향지시등을 켜놓고도 끼어들지 못하여 좌, 우회전을 하지 않고 교차로를 지나쳐 버리는 경우였다. 한번은 신호등에 적색등이 켜져 있는데도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어의가 없어 쳐다보는 나에게 앞의 차가 가길레 자신도 갔다는 변명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연습을 하였으나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차를 맡기지 않고 같이 다녔는데 2 년이 지나자 혼자 해보겠다고 하였다. 언제까지 못하게 할 수가 없어 가까운 거리에는 해 보라고 열쇠를 주었다. 맡겨보니 주차를 제외하곤 곧잘 하기에 운전대를 맡기는 횟수가 서서히 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를 맡겼는데 후진을 하는 도중 낮은 턱에 바퀴가 닿아 넘어가지를 못했다. 가속페달을 살며시 밟아서였다. 앞의 차량이 기다리다 지쳐 경음기를 울리는 통에 내가 세게 밟으라고 크게 고함을 질러 버렸다. 그 순간 아내는 정말 세게 밟아 버렸다.
차는 굉음을 내며 거의 날아 갈 듯이 후진하더니 도로 건너 후방에 주차되어 있는 고급차와 박치기를 해버리고 말았다. 나도 깜짝 놀랐지만 아내는 얼굴이 노랗게 되어 차에서 내리는데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상대 차의 앞부분은 박살나고 말았다.
사고를 냈어도 자신도 뭔가 할 말이 있어야겠기에 나의 고함 소리 때문에 당황하였다고 했다. 목소리까지 떨렸다. 너무 놀란 것 같아 보험처리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진정 시켰다. 아내의 첫 번째 사고였다. 그나마 인명 피해가 없어 수업료를 지불한 셈 쳤다.
사고 후 차를 멀리 하더니 운전대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내심 ‘그것 봐, 운전이 만만한 게 아니야’ 하고 우쭐했는데 운전을 하지 않으니 부부동반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시질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아내를 설득시켰다. 이제 와서 운전을 그만두면 여태껏 했던 연수가 헛것이 되는 것이고 누구나 그렇게 수업료를 내는 것이라며 달랬다. 또한 사고가 나더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말이 주효했던지 운전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 무렵 오랫동안 타던 차를 팔고 신형승용차를 구입하여 진흙탕도 피해갈 정도로 애지중지 다루었다. 아내도 예전의 사고 때문에 조심조심 하였고, 오히려 자신의 연수선생이었던 나에게 안전거리를 지켜라, 차선을 자주 바꾸지 마라는 둥 교육을 시켰다.
새 차가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이제는 정말 운전에 자신 있다며 몰고 간 아내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가더니 뒤 트렁크 부분을 아예 없애버릴 정도의 큰 사고를 낸 것이었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그런데 뒤에 서있는 아내를 보니 당당했다. ‘뭐 운전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하는 표정이다. 주눅 들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분명 화를 낼 것이란 생각에 미리 선수를 치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서 열이 차 올라왔다.
후진을 하며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었다. 다행히 철거하려는 건물을 들이받는 바람에 그냥 올 수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공장에 가보자고 하였더니 자신은 창피스럽다며 혼자 가라고 하였다.
서비스센터 직원은 차를 보고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분은 좋지 않았으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하여야 대범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차는 열흘 후에 감쪽같이 수리 되었다. 사고 후에는 새 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편하게 타고 다니며 아내도 운전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끼어들기도 곧 잘하고 주차도 문제없다. 어디를 간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면허증을 받은 지 10년이 흘렀고 상당한 수업료를 지불한 결과이다. 하지만 요사이도 아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면 나는 기원한다.
‘더 이상의 수업료가 들지 않도록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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