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와 랑부 / 주인석
세상에는 짝을 이루는 낱말이 많다. 임금과 백성,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그리고 주례와 랑부라는 말도 있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축복 관계로 인연이 된 사람들이다. 임금은 백성에게 그 나라에 살도록 존재감을 주고, 부모는 자식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 쓰임 받으며 살도록 존귀함을 주고, 스승은 제자에게 인간의 기본 됨됨이를 가르쳐 바르게 살도록 분별력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백성과 자식, 제자는 그들을 존경하고 가르침에 따른다. 그렇다면 주례와 랑부는 어떤 의미를 담은 만남일까.
며칠 전 참 귀한 광경을 가까이서 보았다. 쌍쌍으로 젊은이들이 모인 자리에 한 마리 학 같이 홀로 참석한 사람이 필자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모양새로 보아 스승과 제자는 아닌 듯했다. 아기를 데리고 앉아 있거나 둘씩 짝지어 있는 것을 보니 부부 모임 같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주례를 서 주었던 사람이고 그날은 주례와 신랑신부가 일 년에 한 번씩 모이는 자리였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주례는 신랑신부에게 부부의 길을 가르쳐 행복하게 살도록 매년 주례사를 다시 해 주었고 그들은 그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여들었다. 필자는 그 모임의 이름을 ‘주례와 랑부’라고 붙여주었다. 이는 주례와 신랑신부를 줄인 말이다.
그의 당부 같은 주례사가 끝나자 신랑신부들은 ‘실제 살아보니 이렇더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사례를 내놓으며 토론을 했다. 문제점과 해결점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그 어떤 모임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가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잘 따라 살듯이 신랑신부도 주례의 말씀을 새겨듣고 실천한다면 행복한 삶은 ‘따 놓은 당상’이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 대부분의 주례는 예식장에서 정해주는 주례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듯 모셨다. 주례사는 붕어빵처럼 틀에 박혀 형식적이고도 식상한 문구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아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나 주례사를 의미 있고 재미있게 해 주는 사람을 주례로 모신다. 여기에 필자가 하나 덧붙인다면 지금까지는 주례를 남자만 했지만 앞으로는 여자들도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필자가 결혼할 때 누가 주례를 섰는지 기억에 없다. 머리가 하얀 노인이 결혼사진에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주례였음은 분명한데 어떤 말을 해 주었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잘 살겠느냐”는 말에 “예”라고 했던 것과 “맞절하세요”라는 말에 거리 조절을 잘 못한 탓으로 신랑과 머리를 부딪쳤던 기억이 전부다. 결혼 후 지금까지 이십 년이 지나도록 주례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주례와 랑부’ 모임에 참석해 조언도 듣고 상담도 하는 신랑신부들이 부러웠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그는 주례사를 좀 특이하게 한다.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 “왜 결혼하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신랑신부 대부분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 그는 “사랑한다고 해서 꼭 결혼할 필요는 없으며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한다면 허락해 주겠노라”고 말한다. 따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사랑은 하되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신랑신부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는 구체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일화로 들려주면서 혼인서약을 받는다. 결혼식장에서 한 번의 주례사로 끝내지 않고 매년 모임 때마다 다시 주례사를 들려주는 그는 진정한 주례였다.
이런 모임을 가지게 된 계기는 신랑신부를 부부로 맺어준 사람으로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주례가 신랑신부와 끈을 놓지 않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는 모습은 부부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정신적 부모를 보는 듯 훈훈했다. 이렇게 교감이 잘 된 신랑신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삶의 고비가 오더라도 극복하는 힘이 좋을 것이다. 이들의 만남이 축복의 끈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어찌 멋지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주례와 랑부는 최근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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