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 김계식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주차장을 제외하고 나무 한 그루 심을 만큼의 작은 공간을 벽돌로 테두리한 곳이다. 밭이라기보다는 화단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성싶다.
십여 년 전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집을 짓고 난 후 버린 모래와 쓰레기로 식물이 살 수 없을 만큼 척박한 땅이었다. 나는 개간하는 마음으로 거기다 새 흙을 넣고 정성스레 손질하여 봉숭아, 백일홍을 비롯한 갖가지 화초와 무 배추 상추 따위를 심었다. 그래서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채소를 심어 가꾸는 여유 있는 삶을 맛보는 재미를 누렸었다.
하루 종일 걸어도 흙 한 점 밟을 수 없는 도심의 아스팔트와 빌딩 숲 속에서 살아가노라니 내 마음도 이에 동화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가난이 진드기같이 따라다녀도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정겨운 농촌, 그리운 흙 내음을 맡으며 늘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내 생활의 터전 한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다.
향수香水같은 흙냄새가 가득한 작은 땅은 여러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바쁘게 마당을 나가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또 다른 가족들을 정성스레 보살펴 준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들도 주인의 이런 정성을 안 것일까. 처음 정해준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혼자만이 살기 위해서 다른 이웃을 해치거나 상처를 주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서로 나눌 줄 알고 정답게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훌륭했다.
그 이듬해 식목일, 한쪽 귀퉁이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낙엽 썩은 흙을 가득 넣은 후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봄이 다 가도록 잎을 피우지 못하던 나무는 생명의 끈질긴 모습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늦은 봄이 되어서야 움이 돋아나 죽지 않았음을 알려왔다.
몇 해의 시간이 흐르자 낙엽 썩은 흙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츰 차츰 좁은 공간을 잠식하더니 마침내 혼자서 밭 전체를 독차지하고 말았다. 두꺼운 잎으로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영양가 있는 햇빛을 혼자만이 배불리 포식하며 온 세상을 독점하려는 듯 그 기세가 너무나 등등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뿌리를 길게 사방으로 뻗어 고향 같은 흙냄새마저도 송두리째 빨아들였다.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뻗쳐 가고 있는 대기업의 독점 경영 체제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흙냄새를 맡으며 키 낮은 식물들과의 즐거운 생활에 빠져 있던 나는 그만 큰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다정스레 자라던 꽃과 채소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처음 몇 번은 그 곳에 씨앗을 뿌려 보았다. 그러나 겨우 싹이 나오다가는 거대한 감나무의 위세에 눌려 이내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용하게 살아남은 몇몇의 생명체들이 어쨌든지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결국 폐결핵환자처럼 노랗게 물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떠나곤 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에서 한줌의 뼈만 남기고 검은 연기 따라 저세상으로 간 동네 아주머니의 애절했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대인하 득 (大人下 得)이요 거목하 패(巨木下 敗)'라고 하던 직장 선배의 취기 어린 목소리가 생각난다. 큰사람 아래서는 훌륭한 사람이 나고 큰 나무 아래 있는 나무는 그늘에 가려서 죽게 된다는 말이다. 성질이 좀 날카로웠던 과장으로부터 꾸중을 듣고 퇴근하다가 술자리에 앉는 날에는 인자하셨던 전임 과장을 한껏 치켜세우며 늘 입버릇처럼 뇌었던 말이다. 그분은 후배들의 먼 장래가 걱정되었던지 부디 훌륭한 사람 아래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었다.
큰 나무 아래는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욕심 많은 감나무의 이런 행태가 미웠다. 그래서 몇 번 베어 버리려고 벼른 적이 있었다. 우둔한 줄만 알았던 말 못 하는 나무도 눈치 하나는 사람들 못지않게 빠른 것 같았다. 이런 위기의식을 느끼기라도 한 듯이 몇 년 전부터는 탐스러운 뇌물을 주렁주렁 매달아 주었다. 이웃 사람들의 부러워할 정도로 소담한 이것은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물욕에 약해진 내 마음을 송두리째 매수해서는 뿌리 깊숙이 묻어 버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횡포가 심해만 갔다. 뇌물의 향기로움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도덕적 감각을 상실하듯 나도 빨갛게 익어가는 감과 정물화 같은 가을 정취에 취해 정신을 잃고 여느 사람들처럼 이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문지상을 가득 메운 무슨 게이트니 하는 기사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우울해진다. 감나무가 나에게 준 홍시의 달콤함에 빠져 햇빛 한번 못 받고 살아가는 식물들의 고달픈 삶을 잊고 지내왔듯이, 짙게 드리운 온갖 사회악의 두터운 그늘 아래 살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는 여태껏 눈길 한번 주지 못했다.
흙냄새 맡으며 꽃과 채소를 가꿀 수 있는 지난날의 일상으로 되돌아가야겠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정다운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가을엔 감나무의 죄를 물어야겠다.
감나무에게는 뇌물공여죄를 적용하여 한쪽 팔을 자르는 사정의 톱날을 들이대어야 하고, 주인인 나는 뇌물수수죄를 적용받아 감의 수확량이 줄어야 하는 형벌을 감수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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