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 조이섭
아이가 소파를 짚고 위태롭게 서 있다. 혼자 선 것이 아니라 제 아빠의 의지로 세워 놓은 것이다. 아이는 잔뜩 겁먹은 낯빛이다. 다리에 힘을 모아 보지만 얼마 못 버티고 스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런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아들에게 가르친 마지막 수업이 생각난다.
아들이 취직하더니 자동차 도로 연수를 시켜 달라고 했다. 집 부근에 있는 공단(工團)으로 도로 주행연습을 하러 나갔다. 휴일 공단 안에는 오가는 차가 별로 없어 운전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연수를 시킬 자동차는 수동변속 승용차였다. 변속기가 자동이면 앞으로 갈 때는 가속 폐달을 밟고 설 때는 브레이크를 밟으면 되기 때문에 딱히 연수라 할 것도 없다. 교통신호와 제한속도만 잘 지키면 그만이다.
수동변속기일 때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출발할 때나 속도에 맞춰 변속할 때 왼발의 클러치를 떼는 것과 오른발로 가속 폐달 밟는 것이 박자가 딱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동이 꺼져 버린다. 특히, 경사로 신호등에서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 시동이 꺼지면 차가 뒤로 슬슬 밀리기 때문에 초보운전자는 경사로에서 신호등을 만나면 겁부터 먹기 십상이다. 말이나 글로는 아무리 주저리주저리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연습해서 숙련되면 손과 발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것이 운전이다. 그냥 걷는 것과 같아진다.
말로 하는 강의를 간단하게 마친 다음 아들에게 시범을 보여 주었다.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뒷유리에는 ‘초보 운전연습’이라 쓴 A4용지가 행여나 떨어질세라 단단하게 붙였다. 시동을 걸어 출발하고 조금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다음에는 공단 안쪽 이면도로를 돌면서 변속기 기어 넣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출발할 때 시동 꺼뜨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출발을 잘했다 싶으면 변속이 제대로 안 되어 차가 덜컹거렸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어서 대로로 나와 본격적인 주행 연습에 들어갔다.
아들은 큰길에 나오니 마음이 또 다른 모양이다. 앞으로 갈 때는 변속을 제법 잘하다가도 신호등 앞에 섰다 출발할 때는 연방 시동을 꺼뜨렸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를 스님 염불 외듯이 하면서도 백미러에 다른 차가 보이면 마음이 오그라들었다. 아들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앞만 바라보았다.
예전에 아내에게 도로연수를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옆에 앉아 잔소리를 폭풍처럼 퍼부었다. 아내 도로연수는 웬만한 인내심 없이 함부로 덤벼들 일이 아니다. 도로연수를 하다가 다툰 끝에 이혼한 부부도 있다지 않던가. 그때 연수를 잘못 받아서인지 아내는 자동변속기인 차로는 동네 장보기도 겨우 하고 있다.
아들에게 가르칠 때는 부처 가운데 토막이 되었다. 아내 도로연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괜찮아, 뒤에 ‘초보 운전’붙여 놓았으니 뒤차들이 알아서 피해간다. 앞만 보고 침착하게 가자.” 한 자리에서 몇 번이나 시동을 꺼뜨려도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다.
운전은 단순한 동작을 반복해서 익히는 기능이다. 젊은 아이라 공단을 크게 몇 바퀴 돌고 나니 금방 요령을 알아채고 변속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공단 주차장에서 주차선에 맞추어 앞으로 뒤로 주차하는 연습까지 충분히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 두 가지를 아들에게 일러 주었다. 첫째, 십 분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면 운전을 무리하게 할 수밖에 없다. 앞지르기, 경적 울리기, 과속은 모두 급해서 그런 것이다. 십 분만 여유가 있으면, 운전이 저절로 느긋해진다. 길에서 서두르지 말고 집에서 서두르는 것이 안전 운전의 첩경이다.
둘째, 술을 마시기든 절대로 운전대를 잡지 마라. 피해자는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면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이냐. 아버지도 젊었을 때 술을 마시고 핸들을 잡았다가 큰일 낼 뻔하고는 음주운전을 딱 끊었다. 아들이 모르고 있던 치부까지 들먹이며 당부에 당부를 더 했더니 아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두 시간여에 걸친 도로연수가 끝이 났다.
“오늘 아들과 함께한 도로연수가 마지막 수업인 것 같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는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더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내가 너한테 배울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수업을 하고 나니 조금 슬프기도 하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이제 아들이 혼자서 세상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나의 품을 벗어날 것이다. 나의 세대가 물러나고 아들 세대가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그러고 보니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집을 나서던 아들의 인사가 “안녕히 계십시오.”로 바뀌었다. 마리 퀴리 여사의 마지막 수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도로연수는 부자간의 사랑과 소통을 확인한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얼마 후 마음이 울적하여 인근 도시에 사는 아들에게 가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갈 데가 마땅찮을 때 전화할 아들이 있는 아버지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아들은 전화로 음성만 듣고도 아버지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미리 횟집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술상을 보아두었다. 아버지의 넋두리를 들어 주고 조언까지 해주었다. 모두 마지막 수업의 효과가 아닌가 싶었다.
손자더러 일어서라고 내미는 아들의 손이 대견하다.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웃으면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아들은 사랑과 인내심으로 손자를 보살필 것이다. 내가 했던 마지막 수업처럼 믿고 기다리는 내리사랑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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