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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간이역 / 임만빈

간이역 / 임만빈

 

 

 

추석차례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고향집을 나섰다. 어젯밤 아버지가 거처하시던 흙벽의 안방에서 잠을 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방에서 잠을 자서인지 몸에서는 흙냄새가 풍겼다. 왜 이제야 흙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식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고향집을 떠난다는 것, 고향집과 아버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묘, 묘와 흙, 흙과 고향이 연결되어 있어서, 고향집을 떠난다는 것은 곧 아버지 곁을 떠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흙냄새로 붙어 피어오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이란 무엇인가? 사라진 것이나 없는 것에 대한 끊어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끄나풀이 아닌가. 끄나풀의 한쪽 끝은 머릿속에 응고되어 있는 추억일 것이며 한쪽 끝은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삶이란 결국 끄나풀들을 자꾸만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은 머릿속에 녹아 기억이 되면서 사라지고 기억 중 일부는 숙성되어 추억이 되고 추억을 떠 올릴 때는 기억이 되살아나 잊어버렸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말이다. 가을의 처량한 호우 빛은 추억을 끌어내는 묘한 힘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문득 중학교 시절 기차 통학을 하면서 이용했던 간이역이 궁금해졌다.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역이 있던 곳으로 차를 몰았다.

간이역이 있었을 듯한 곳을 둘러보았다. 역사驛舍, 플랫폼도, 지나온 역과 앞으로 갈 역을 표시해 놓은 안내판도 없다. 안내판의 화살표만 따라가면 내 꿈이 이루어 질 것만 같았었다. 남쪽으로 표시한 끝은 무시하고 북쪽으로 그어진 서울 쪽으로만 내 어린 눈빛은 향했었다. 그렇지만 50여년이 흐른 지금 나는 내가 그렇게 눈가림을 했던 서울의 반대방향에서 살고 있다.

역사 자리쯤으로 생각되는 곳을 두리번거렸다. 멋대가리 없는 창고 같은 간이식 건물이 하나 우둑하니 서 있다. 활짝 열려있던 역사의 문과 창문으로는 10대의 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장소였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건물에는 철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농촌에는 꿈을 피울 10대들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하다. 과거 우리 10대들이 꾸던 꿈들, 뭉글뭉글 피어오르던 꿈 뭉치들도 사라진 역사와 함께 하늘 속으로 날아 올라가버린 것 같다.

옛날 간이역 앞에 있던 상점도, 빵집도 없다. 남학생들은 상점 앞에 놓여있는 평상에 앉아서, 여학생들은 빵집 안의 자리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곤 했었다. 여학생들의 교복에 부착한 흰색의 목 칼라가 김으로 가득 찬 빵집의 유리창으로 비쳐 나올 때 나는 왜 나는 그렇게 신비로워 했는지, 빵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내딛는 여학생들의 남색 운동화 위로 솟아있는 하얀 양말의 목은 왜 또 그리 순수하게 보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내 마음도 목 칼라나 양말 색깔같이 희고 순수했던 것 같다.

기차가 도착하면 우리들은 객차의 승강장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었다. 여학생들이 먼저 승차하도록 그들을 앞세웠다. 기차에 올라타면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기차 칸의 양쪽 편으로 갈라졌었다.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각각 행동했지만, 우리들의 몸과 입과 눈과 귀는 각각 따로 놀았다. , 여학생들은 앞에 있는 각각의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눈은 건너편에 모여 있는 상대편 학생들에게 몰래 옮겨 갔고, 귀는 건너편 학생들의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더욱 세워져서, 앞에 있는 학생보다 건너편 학생의 모습과 이야기가 더 선명하고 보였고 들렸다. 학교가 있는 기차 정거장에 도착하면 상대편 학생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각각의 학교로 걸어갔지만,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는 학생이 좋아한다는 눈길을 보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를 바라곤 했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상대방이 무심한 눈길을 한 번 슬쩍 보내기라도 하면 자기가 보냈던 좋아한다는 의미를 깨달은 신호로 알고 작은 가슴을 팔딱거리며 학교로 향하곤 했었다.

기차 통학의 추억 속에는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두 개의 죄책감이 가슴속에 매달려 있다. 어느 날 학교에 가려고 간이역으로 가던 길이었다. 기차 시간에 늦어 정신없이 걷고 있었다. 저 앞에는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학생이 역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기적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기차가 저쪽 산모퉁이를 돌아서 간이역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죽기 살기로 달렸다. 좋아하는 여학생도 앞에 달려가고 있었으나 책가방이 무거워서인지 달리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녀 옆을 달려 지나가는데 기차는 정차했다가 떠나는 기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녀의 책가방을 내가 들고 뛰면 그녀의 달리는 속도가 빨라져서 같이 기차를 탈것도 같았다. 그러나 혹시 기차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떠올랐다. 순간 모른 척 쏜살같이 그녀 곁을 지나 기차를 탔다.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오다가 떠나가는 기차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서 있는 그녀를 달리는 기차의 난간에 서서 부끄러운 듯 바라보면서 나는 서 있었다.

부모님은 우리들한테 충분한 용돈을 주시지 않았었다. 그래서 역 앞에 있는 빵집을 드나들 수가 없었다. 빵집 유리창 앞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빵들이 얹혀진 접시가 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수시로 빵집을 드나들면서 빵을 사먹곤 했다. 그 빵이 정말로 먹고 싶었다. 앙꼬가 들어간 빵은 혀끝에 녹는 단맛으로, 만두 빵은 빵을 먹을 때 씹히는 당면과 야채와 고기 조각의 감칠맛으로 정말로 먹고 싶었다. 기차 정기 승차권을 끊으라고 준 돈을 빵을 사 먹는데 쓰기 시작했다. 한번 쓰기 시작한 돈은 기차 승차권을 끊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다 써버리고 말았다. 기차 승차권을 넣는 빈 지갑만 들고 기차를 탔다. 역을 나갈 때는 그 지갑을 보여주고 통과했다. 몇 번을 그렇게 한 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십리도 넘는 학교를 결국 걸어 다녔다.

어찌 역의 입구를 지키는 역무원이 빈 지갑을 내보이는 내가 승차권이 없다는 것을 몰랐겠는가? 그분도 무척 고민하지 않았을까? 역무원의 직무로는 불법승차한 나를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집이 가난해서 승차권을 끊을 돈이 없어 어린나이에 무임승차하는 것일 거라고, 내가 그 돈으로 빵을 사먹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간이역 모습이 눈에 선한데 보이지가 않는다. 비록 간이簡易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라져야할 운명을 암시한다 하더라도 왜 이리 섭섭한지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모른 척 뒤에 남겨두고 달렸던 그 여학생도 육십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며, 나의 빈껍데기 승차권 지갑을 보고 먼 산 쪽으로 눈길을 돌렸던 역무원도 노인이 되었거나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없네요."

운전석 옆에 타고 있는 아내가 말한다.

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릿아릿한 사랑이 영글던 그 꽃망울 같던 우리들과 여학생들의 앳된 얼굴도, 한번씩 여학생 쪽으로 곁눈질하던 눈길도, 그렇게 들으려했던 여학생들의 조잘거림도, 이제는 없는 것이다. 단지 녹아내리지 못하고 뭉쳐 있는 죄책감과 사라진 간이역의 모습만 희미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어? 간이역 같이 결국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어? 아쉬운 기억만 몇 개 남기고 그렇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어?" 나는 또 다시 결국 사라질 간이역인 집을 향해서 차를 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