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 최원현
문을 여니 향긋한 냄새가 와락 몰려든다. 무엇일까. 두리번거리는 내게 텔레비전 위에 작은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냄새는 거기서 나는 것 같다.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던 처제에게 친구가 가져왔다던 세 개의 모과, 그 때 처제는 제일 잘 생긴 것으로 골라 나에게 주었었다. 헌데 언젠가 보니 바쁜 일상의 뒷전에서 보아주는 이 없이 저만치 밀려나 메마른 쪼그랑박이가 되어 있었다.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던 물건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빈집을 지키며 방안 가득 향기를 채워 놓고 있었으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가만히 모과를 들어본다. 노오랗던 처음의 색깔이 이젠 거무스름해졌고, 그나마 쪼그라져 메마른 모습에는 아무런 향기도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모과를 처연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모과가 외할머니의 마지막 얼굴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아픔의 산, 슬픔의 강을 넘고 건너며 한의 세월을 살다 가신 할머니. 쪼글쪼글해진 모과가 하필 외할머니의 모습으로 보였을까? 불현듯 떠오른 할머니의 모습에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모래펄에 밀려드는 파도 마냥 가슴 가득 몰려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든 여섯 해의 짧다 할 수 없는 삶의 길을 잠시도 마음 편히 살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기쁨이나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생각해 볼수 없던 인고忍苦의 길고 긴 여정을 마감하고 할머니가 가신 것이다.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는 당장 할머니께 다녀오라고 했다. 허나 어줍잖은 나의 마음이 임종조차 지켜 드리지 못한 크나큰 불효에 이르게 하고 말았으니…….
임종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광주로 내려갔다. 하지만 거리가 먼 만큼 도착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막내 이모님 댁에서 운명하신 할머니는 입관 후 양자인 외숙 댁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미처 당도하지 못했지만 입관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모님 댁의 열린 문을 들어서자 두 분 이모님께서 달려나오시며 통곡을 터뜨리셨다.
"아이고, 그렇게 원현이 원현이 하시더니 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가실려고 시간 맞춰 오게 하셨구나!"
큰이모님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를 뵙게 되었다. 할머니는 면포만 남겨 두고 계셨다. 할머니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번 뵈올 때만 해도 그리 안색이 좋으셨는데 생명의 기운이 떠나고 난 지금엔 잎 진 겨울나무만 같다.
돌아가신 지 몇 시간이 지났으니 어찌 체온이 남아 있으랴만 할머니의 볼에 내 볼을 갖다 대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할머니의 체온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벌써 입관을 끝내고 외숙 댁으로 모셨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숙련된 장의사 사람들인데도 빠뜨리고 온 것이 많아 이렇게 지체 되었단다.
지금도 관포를 하려는데 상체 부위에 약간의 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초석용 한지를 사러 보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손주 얼굴 못 보고 가실까봐 그러시나 보다고 모두들 눈시울이 뜨거워져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한 나.
할머니만은 내 손으로 직접 염을 해드리라 마음먹고 있었건만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인가.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할머니께선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곡기를 끊으시고 계속 배설만 하셨다고 한다.
결구, 이 땅에 오신 후 당신이 쓰고 남기신 물 한 방울까지라도 되돌려 주시고 오신 모습 그대로 가시고자 하셨을까? 평생 동안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못하고 사신 할머니. 자신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색 않으시고, 남의 어려움에는 결코 지나치지 못하시던 할머니.
참판 댁 수천 석꾼 장손녀로 태어나 시집이라고 오셨건만 일본으로 만주로 외유만 하시던 젊은 날의 외조부님과는 부부간의 오붓한 한 때도 가져볼 수 없던 외로움 속에 아들도 낳지 못해 딸만 셋을 거느리고 항상 조상님께까지 죄스러움으로 사셨다. 거기에 세 사위와 큰딸까지 먼저 보내셨으니 어찌 눈물이라고 남아 있었을까.
숟가락이며 이불, 심지어 베개까지도 복福자 투성이인 이 나라에 태어나셨으면서도 한 숟갈 분의 복도 당신의 것일 수 없던 할머니.
할머니는 얼음 밑으로 졸졸졸 흐르는 겨울 산골 물처럼 아낄 것도 버릴 것도 줄일 것도 없이 사신 분이었다.
어느 해였던가. 방학이 되어 내려가니 할머니께서 광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내가 오면 주시겠다고 찹쌀 항아리에 크고 잘 생긴 장도감 하날 넣어 두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 겨울 내가 내려오지 않아서 버리게 되었지만 당신께서 잡수시긴 아까워 금년 여름까지 놔두었노라고 하셨다.
결국, 감은 곯아져 먹을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나를 향하신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은 지금도 감만 보면 새롭게 살아나곤 한다.
장례식 전 날 오후부터 추근추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복 없으신 분이라 돌아가셔서까지도 고생 하시려나 보다고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러나 비는 이내 그치고 장례 날 봄날처럼 포근했다.
가시는 마지막 걸음까지도 남에게 어려움을 끼치지 않으시려는 마음스심이 빗가닥 눈물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음인가.
가만히 두 손으로 모과를 감싸 쥐고 볼에 갖다 대본다. 사실 예쁘고 탐스러운 과일도 많으나 가장 못생겼다는 이 모과에 견줄 만큼 은은한 과향을 풍기는 과일이 어디 있는가.
모과를 코끝에 대어 본다. 향내가 흠씬 코 안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여느 때 맡던 그런 과향이 아닌 것 같다. 할머니의 품에서 풍겨나던 내 어린 날의 흙 냄새, 집 뒤꼍의 솔향이며 풀내음 그리고 할머니의 땀내까지 어우러진 내 그리움의 내음이다.
메마르고 오래 되면 제 몫을 못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건만 모과는 말라 쪼그라져 가면서 더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것 같다.
하기야 언젠가는 아주 말라 아무 냄새도 나지 않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모과가 아니라고야 할 수 있으랴. 몸은 비록 메말라가도 내면에 배인 품향品香을 더욱 짙게 풍겨내는 모과, 나는 언제까지고 이 모과를 나의 곁에 두고 싶다.
한과 눈물과 아픔의 긴 세월 끝에 눈감으신 할머니. 산마루에 잠기는 노을 빛 애상을 품고 마지막 순간까지 향기를 품어내는 모과처럼 당신의 작은 방에 몸을 누이시고 내게 보이시던 평화로움.
훗날 나는 어떤 모습, 어떤 향기로 나를 기억케 할 것인가. 오늘도 할머니는 사랑의 향기로 그리움의 꽃불을 켠 채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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