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 류영택
수목원 초입, 장승 앞에 선 아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툭 불거진 눈, 앞니가 빠진 잇몸을 드러내고 서 있는 장승(長丞)이 무서운가보다. 아이는 몇 발작 뒷걸음을 치다 저만치 쳐져서 오는 어머니 곁으로 닫음 발을 친다. 하긴 둥그런 눈을 하고 서 있는 장승이 무섭기도 하겠지. 다시 내 앞을 지나는 아이는 앞으로 곧장 걷는 어머니의 걸음걸이와 달리 자꾸만 옆으로 향한다. 팔목을 뒤트는 것을 보니 장승 쪽으로 가기가 싫은가보다. 꽃게걸음을 하며 슬쩍 장승을 훔쳐보는 아이의 눈빛이 지난 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을 짓고 만다.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서있는 나를 내려다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X선처럼 느껴졌다. 숨을 멈추고 서 있으면 철거덕 소리와 동시에 보이지 않는 선이 몸을 간통하고 어느새 앙상한 갈비뼈와 허파와 심장,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들어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색은 자꾸만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절대로 도둑놈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이번에는 다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하필이면 그때 내 모습을 볼게 뭐람.' 칼바람에 문풍지가 떨리듯 이젠 땀을 문지르던 바짓가랑이에까지 떨림이 전해져왔다. 나는 도둑질한 것을 반성하기보다 선생님의 그 눈빛에서 놓여나기만을 바랬다.
초등학교 저학년, 그날은 소풍날이었다. 교문을 들어서자 장사꾼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먹어보지 못했던, 리어카에 사탕을 가득 실은 장사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과자봉지를 집어든 채 가격을 묻는 아이, 값을 치르는 아이, 원체 북적이다보니 아저씨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거스름돈을 치르느라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무리들 속에서 삐죽 손이 삐져나왔다. 사탕을 집은 손이 사라지기 무섭게 또 다른 손이 삐져나왔다. 잠시 후 양 볼에 사탕을 넣은 아이들의 손이 무리들 속에서 또 삐져나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대담해졌다. 사탕을 한 옴큼을 집었다. 시간이 지나자 자꾸만 손이 불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도 과자를 집었다. 친구는 허리를 툭 치며 눈을 끔쩍였다. 나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 사탕하나를 집었다. 그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뒤를 돌아보자 선생님이 나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선생님은 내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만 봤다. 나는 손에 들린 사탕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그렇게 서 있던 나는 얼른 과자를 원래 자리에 갖다놓았다. 다시 돌아서자 선생님은 자리에 없었다. 순간 온몸이 서늘해져왔다. 온기가 빠져 나간 자리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꿈을 꾼 건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내 머릿속에는 실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는 선생님의 눈빛만 오롯이 남아있었다.
소풍날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분명 나를 부를 텐데.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하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일을 잊어버렸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는 순간 불현듯 그날 일을 떠올리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 갈 때나 우물가에 갈 때도 나는 교실 모퉁이에 몸을 붙이고 주위를 살폈다. 어쩌다 선생님 앞을 지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닥치면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친구들 틈에 끼어 길을 걸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선생님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소꼴을 먹이느라 신작로에 서 있던 내 귀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저만치서 손짓을 하는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담임도 아니고, 전교생이 수백 명이나 되는데 어찌 내 이름을 알까. 잊은 줄 알았는데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둘러 고개 아래로 달려갔다.
땅에 눈을 내리깔고 꾸벅 절을 했다. 가정방문을 다녀오시는 길인지 선생님의 자전거에는 마늘, 양파, 무 등이 잔뜩 실려 있었다.
어찌 내 이름을 알지. 도둑놈이라고 뒷조사를 한 건가. 마음에 조바심이 일수록 나는 더 용을 씨며 자전거를 밀었다. 어린 마음에 그것으로 잘못을 만회하고 싶어,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에서다.
하지만 내가 용을 쓰는 것만큼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핸들은 잡은 선생님의 걸음걸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고무신에 땀이 배도록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선생님이 뒤를 휘딱 걷어봤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그날 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순간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이 일시에 멈춰버렸다. 땀구멍이 막힌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영택아 힘들제?" 근엄하게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느라 "아입니더. 괜찮심더."그 말 대신 꽥 하고 기침이 튀어나왔다.
오르막에 다 오르자 선생님이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의 눈빛은 조금 전과 달라보였다. 초점을 모우고 먹잇감을 노려보는 독수리눈처럼 '너는 도둑놈이야.'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다. 시선을 둘 곳이 없던 나는 자리에서서 땅만 내려다봤다. 나만 그런 게 아닌데. 나는 진짜 도둑놈이 아닌데. 남들 따라 그냥 한 번 했을 뿐인데. 이번 한번만 용서해주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텐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서 있자. "공부 열심히 해라. 그라고,,,"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밤송이 같이 쭈뼛 솟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끼익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가물가물 선생님의 모습이 멀어질수록 내 머리에 올려놓았던 그 손길이 무게를 더하고 퀭한 눈빛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이러지 말아야지 몸을 뒤틀수록 가슴속서러움이 울컥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본의 아니게 남에 것을 탐한 게 어찌 그 일 뿐이겠는가. 때로는 남에게 못할 짓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의식적으로 자리를 피하거나 어쩌다 상대와 마주치게 되도 차마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그날 선생님의 눈빛을 바로 볼 수가 없어 땅만 내려다본 것도 그나마 마음속에 양심이 살아 있어 그랬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내 마음을 헤아렸기에 용서해주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행여 다른 선생님에게나 사탕장사에게 들켰다면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둑질은 나쁜 것이다. 훔친 것에 비해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거나 창피를 당했다면,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장난삼아 사탕하나 훔친 것인데. 반발심에 오히려 벗나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머리에 내려놓는 선생님의 그 손길이 그래서 더 무겁게 느껴졌고, 가슴을 저미는 서러움에 울컥 눈물을 지었다.
정말 무서운 건 장승처럼 두 눈을 부라린 눈빛이 아니라 실눈을 하고 가만히 내려다보는 눈빛이었다. 지그시 내려 보는 선생님의 그 눈빛은 나를 지켜보는, 착하게 살아가라는 애정의 눈빛이었다.
잠시 전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부릅뜬 눈,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장승과 동그랗게 놀란 눈을 한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웃음을 짓는다.
아이의 놀란 모습에 정작 자신이 더 놀랐다 듯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승의 모습에서 해학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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