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 김정화
작은딸과 함께 거창 출렁다리로 갔다. 돌림앓이 탓에 들머리에서 길을 막는다.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생각을 모아 30km를 더 달려 수승대로 옮겼다. 둘레길을 걷는다. 강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니 저만치 앞에 가는 곁님이 전화를 한다. 조금 지나자 작은딸에게 전화기를 건네고 딸은 또 내게 건넨다. 아들 목소리이다.
아들 목소리가 애틋하다. 집에 오고 싶다고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제가 클 적에 엄마 아빠가 한 말들이 다 옳았다고 뜬금없이 말했다. 공부하라고 나무라도 나쁘지 않았고 잔소리도 아니었단다. 군대 가더니 참으로 철이 드는가.
군대 가기 하루 앞서 까까머리를 하고 온 날 크게 웃었다. 군대 간다고 돈 들여 머리하지 말라고 말한 지 보름 만에 머리를 빡빡 깎더라. 아침에 본 뽀글머리가 저녁에 보니 민둥민둥했다. 머리칼이 아까워서 어떻게 잘랐을까, 겨우 웃음을 참고 슬픈 척했다.
아들은 머리에 마음을 많이 썼다. 여섯 살까지는 짧게 하고 다녔다. 까까머리보다는 조금 길어서 밤톨 같았다. 눈도 초롱초롱하고 그 머리가 참 어울렸다. 어느덧 머리를 길렀다. 열 살 무렵 머리를 잘 깎지 않았다. 손질 않은 머리가 길다. 조그마한 얼굴이 안경에 가리고 앞머리에 가리고 좁았다. 옆도 잘 보지 않아 잘 부딪쳤다.
5월 첫 무렵이던가. 곁님이 시골에 모내기할 논을 갈러 가고 없을 적에 나는 세 아이를 데리고 손질집으로 갔다가 큰아이는 병원 가서 어깨결림을 다스렸다. 아들은 도립병원에도 갔으나 쉬는 때라며 돌아보지 못하고 다시 집 옆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레쯤 미루기로 하고 아들 머리 깎으려고 갔다.
“머리 자르지 말고 그냥 길러서 묶어 다녀!”
“싫어!”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동무들이 여자 같다고 해.”
좀처럼 머리 자르기를 싫어하더니 웬일인지 머리를 자르려고 했다.
“아줌마, 앞머리하고 구레나룻은 조금만 잘라 주세요.”
아들 말이 끝나자 고개 숙인 바닥에 머리카락이 뚝뚝 떨어졌다. 머리를 다 자르지도 않았는데 아들은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머 너 왜 울어?”
“바가지 머리가 되었잖아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들이 말했다. 미용사는 우는 아들을 살살 달랬다. 나도 거들며 달랬다. 그리고 한마음을 내려놓은 듯 눈물을 뚝 그쳤다.
곧은 머리카락으로 구레나룻을 남기니 머리가 삐죽삐죽 깎여 머리를 잘라도 깔끔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머리집은 스스로 가자고 해야만 갔고 처음 간 곳만 찾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학원 옆에 있는 곳을 스스로 처음 가더니 단골로 삼았다. 대학 가서도 머리 깎을 때가 되면 대전에서 집으로 왔다. 찻삯이 들어도 꼭 그 집만 가고 다른 곳은 가지 않았다.
그토록 머리만큼은 스스로 마음을 쏟았다. 수능을 치르자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재석 닮은 머리로 살짝 볶았다. 그리고 닮기도 했다. 귀찮을 듯도 한데 늘 머리를 말고 내가 볼세라 발로 문을 닫아버렸다. 이마가 넓어 대머리라도 될까 싶어 값비싼 비누만 쓰고 군대 가서도 그 비누만 쓴다.
머리가 짧을 적에는 고분고분을 배우는 듯하다. 배냇머리 깎고 스무 해 만에 처음인 까까머리를 한 아들이 군대에서 생각이 자라고 이대로라면 머리칼에 눈을 가려서 넘어지는 일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왜 사내는 머리를 짧아야 할까. 왜 머리가 긴 사내는 학교에서 놀림 받아야 할까. 군대는 까까머리여야 군인으로 잘 지낼까. 긴머리여도 군인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으로 사내하고 가시내를 가르는 눈길은 얼마나 올바를까. 아니,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기르고 싶으면 기르고, 깎고 싶으면 깎고, 마음을 곧고 차분하면서 아름답게 가꿀 적에 사내답고 가시내답지 않을까. 군대에 있는 아들이 전화기로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해 본다.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세상 > 좋은수필 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낙화 / 박영순 (0) | 2022.03.27 |
---|---|
[좋은수필]솔방울을 그리며 / 김이경 (0) | 2022.03.26 |
[좋은수필]고독한 사이프러스 / 민명자 (0) | 2022.03.24 |
[좋은수필]아름다운 손 / 이혜주 (0) | 2022.03.23 |
[좋은수필]아버지 / 박재완 (0) | 202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