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별리別離 / 김영관

별리別離 / 김영관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었다. 고속도로 출구에서 통행요금을 정산하는데 톨 부스 벽에 붙은 여권 크기의 빼곡한 어린이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실종 어린이를 찾는 포스트였다.

고개가 저어졌다. 스마트 폰에 손가락으로 몇 번만 누르면 단 몇 초 안에 모든 것을 검색할 수 있는 21세기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그것도 IT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후진적인 방법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만큼 귀하고 중한 인연이 어디 있을까, 그 인연이 단절된 저 아이와 부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태우고 있을 거라는 생각 위로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내용이 겹쳐졌다.

1999년 네 살 때 고아원에서 독일로 입양되어 변호사가 된 이십 대 후반의 여성이 고국을 찾아와 부모님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친부모를 만나면 친구처럼 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기를 고아원에 맡겼다 하더라도 다 이해하고 잘 지내겠다는 그녀의 열린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

또 다른 자매 이야기도 있었다. 1971년 대구 반야월과 대구역에서 발견되어 각각 미국과 벨기에로 입양되었던 자매가 오십 대가 되어 우연히 유전자 검사 결과를 마이 헤리티지라는 공유 사이트에 올려 이 메일을 주고받다, 서로 닮은 점이 많아 최초 입양될 때 출발 장소였던 대구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사람이 대구역 대합실에서 서로 얼굴을 보는 순간 한눈에 형제라는 걸 알아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였다. 두 사람은 꼭 빼닮은 외모만큼이나, 식성과 취미까지 같다는 걸 확인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을 만나면 전혀 화나지 않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자동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데 나의 머릿속은 막냇동생에 대한 기억을 풀어내고 있었다.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있을 때였다. 일곱 살인 막냇동생을 데리고 자갈치시장 앞 어선들이 정박해지는 선창가로 낚시를 하러 갔다. 그곳엔 정박해 있는 부선艀船들이 많았다. 부선 위에는 낚시꾼들이 모여 여름에는 망둑어를, 겨울이면 고등어 새끼를 낚았다. 바닷물이 잔잔할 때는 고기들이 미끼를 삼키는 걸 보고 낚아 올리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어시장 옆 부선에 올라 모퉁이 자리를 잡았다. 어른들 사이에서 미끼를 끼운 낚싯줄을 바닷속으로 던졌다. 신기했다. 옆 어른보다 더 빨리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올라왔다. 고기를 낚는 재미에 폭 빠졌다. 햇빛이 바닷물 속을 훤히 비추는 한낮이 되자 고기가 물지 않았다.

낚시꾼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몇 사람만이 낚싯바늘을 멀리 던져 넣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살폈다.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우둔한 나는 낚싯대를 갖고, 아니면 두고, 동생을 찾아 나설지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러다 우는 동생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이 급했다. 잡은 물고기도, 낚싯대도 그대로 둔 채 동생 이름을 부르며 비린내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장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 데다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내 달리며 두리번거렸으나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이 들었다. 처음엔 부끄러움에 띄엄띄엄 작은 목소리로 동생 이름을 불렀다. 나의 목소리는 어시장의 시끄러운 소리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질펀한 바닥에 잠겼다.

부선에서 점점 멀어지자 동생을 영영 못 찾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덜컥 겁이 났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큰 소리로 동생을 부르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데 저만치 영도다리가 보였다. 자갈치 시장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나는 내려온 옆길로 뛰었다. 정신이 없었다. 가끔 보이는 아이들 모두가 동생 같아 보였다. 그렇게 자갈치 시장을 세 바퀴나 삥삥 돌았다. 목이 쉬고, 울음소리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리가 아파 더는 뛸 힘도 없었다. 이미 짧은 가을볕은 냉동 공장 벽을 절반 이상 기어오르고 있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머릿속도 텅 비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냉동 공장 모퉁이에 앉아 어선 위로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물안개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또 들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들렸다. 끊어지길 반복하는 그 소리는 분명 귀에 익은 소리였다. 벌떡 일어났다. 소리를 좇아 걸음을 옮겼다. 얼음 공장 모퉁이를 돌았다. 동생이 짐 싣는 수레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잠꼬대처럼 훌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안았다. 동생은 서럽게 울었다. 동생을 찾았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 동생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집이 먼 거리였지만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이후 나는 사람 찾는다는 전단지만 보면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한 건도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없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