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 한흑구
아침 햇살이 수평선 위에 부챗살같이 퍼져 올라올 때면, 너 갈매기는 흰 두 날개 위에 황금빛을 지니고 푸른 바다 위를 왕자인양 너울거리며 날아다닌다.
그러나 너는 왕자도 아니고 더구나 시신(詩神)도 아니다. 너는 하나의 방랑자이며 바다를 지키고 어부들의 길잡이꾼으로 필요한 바다의 새이며, 없어는 안 되는 익조의 하나인 것이다.
푸른 하늘 위에 흰 구멍들을 뚫으며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너희들이 고기떼를 찾아서 공격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솔씨를 먹고사는 산새들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산고기만 먹고사는 너희들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듣기에도 소름 끼치는 울음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너는 바다의 왕자도 아니고 더구나 시신이 될 수 없다. 너의 흰 날개, 너의 긴 날개는 춤을 추는 무희같이 멋지게 훨훨 날지만, 너는 한낱 슬픈 방랑자인 것이다.
너희들이 모여서 고기를 잡아내는 곳에 어부들은 기꺼이 간다. 너도 먹기 위해서 바다를 떠돌아다니고 어부들도 먹기 위해서 너의 길잡이를 기뻐한다.
거센 파도가 출렁이는 검은 바다 위를 항상 헤매야 하는 너는 같은 흰 빛깔을 하고 있는 두루미와 학과 백로보다 얼마나 험하고 기막힌 신세인가.
오늘 아침에도 나는 너의 황금색이 어린, 너의 활짝 벌린 힘찬 날개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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