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 시 (168)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 시]괜찮아 / 한강 괜찮아 /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 [좋은 시]맨발로 걷기 / 장석남 맨발로 걷기 / 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 [좋은 시]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좋은 시]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 용 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 용 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 [좋은 시]장마전선 / 이외수 장마전선 / 이외수 흐린 날 누군가의 영혼이 내 관절 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 내게서 버림받은 모든 것들은 내게서 아픔으로 못박히나니 이 세상 그늘진 어디쯤에서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가 저린 뼈로 저린 뼈로 울고 있는가 대숲 가득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좋은 시]사랑한다 /정호승 사랑한다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 [좋은 시]들꽃 언덕에서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유안진 들꽃 언덕에서 깨달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깨달았다 [좋은 시]悲歌 / 김 춘수 悲歌 / 김춘수 내 살이 네 살에 닿고 싶어한다 나는 시방 그런 수렁에 빠져있다 수렁은 밑도 없고 끝도 없다 가도 가도 나는 네가 그립기만 하다 나는 네가 얼마만큼 그리운가 이를테면 내 살이 네 살을 비집고 들어가 네 살을 비비고 문지르고 후벼파고 싶은 꼭 한번 그러고 싶을 그만큼 이전 1 2 3 4 5 6 7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