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 시 (168)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 시]약속 / 천상병 약속 / 천상병 한 그루의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톳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좋은 시]비의 사랑 / 문정희 비의 사랑 / 문정희 몸 속의 뼈를 뽑아내고 싶다. 물이고 싶다. 물보다 더 부드러운 향기로 그만 스미고 싶다. 당신의 어둠의 뿌리 가시의 끝의 끝까지 적시고 싶다. 그대 잠 속에 안겨 지상의 것들을 말갛게 씻어내고 싶다. 눈 틔우고 싶다. [좋은 시]봄까치꽃 / 이해인 봄까치꽃 / 이해인 까치가 놀러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 [좋은 시]새와 나무 / 류시화 새와 나무 / 류시화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 [좋은 시]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 [좋은 시]홀로 차를 마신다 / 정호승 홀로 차를 마신다 / 정호승 홀로 차를 마신다 기어이 너를 죽인다 너를 죽여 삽을 들고 땅에 묻는다 잠시 성긴 눈이 내리고 몇 백년이 지나간다 홀로 차를 마신다 기어이 삽을 들고 너를 파낸다 나뭇가지를 주워 강가에 너를 태운다 진홍가슴새 한 마리 흰 불길 밖으로 날아가고 난초잎이 바람에 흔들.. [좋은 시]늑대 / 이동호 늑대 / 이동호 총포사 쇼윈도 앞 박제된 늑대를 본다 으르렁거리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카메라셔터라도 눌렀던 것일까 사진처럼 죽음에 걸려있는 늑대 한 마리 송곳니를 지나던 불빛이 너덜거린다 총신을 헝겊으로 닦고 있는 늙은 남자가 늑대의 주인은 아닐 것이다 야성은 함부로 길들일 수 없는 법 .. [좋은 시]비 그치고 / 류시화 비 그치고 / 류시화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이전 1 2 3 4 5 6 7 8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