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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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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과목 / 박성룡 과목 / 박성룡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뿌리는 박질 붉은 황토에 가지들은 한낱 비바람들 속에 뻗어 출렁거렸으나 모든 것이 멸렬하는 가을을 가려 그는 홀로 황홀한 빛깔과 무게의 은총을 지니게 되는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
[좋은 시]모른다고 한다 / 김춘수 모른다고 한다 / 김춘수 산은 모른다고 한다 물은 모른다 모른다고 한다 속잎 파릇파릇 돋아나는 날 모른다고 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내가 이처럼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산은 모른다고 한다 물은 모른다 모른다고 한다.
[좋은 시]연애에 대하여 / 이기철 연애에 대하여 / 이기철 아무리 방탕 가운데 갖다놓아도 인간은 짐승은 되지 않는다 그는 직립하고, 그는 걸으면서 생각한다 악을 만지고 돌아온 손이 희고 깨끗한 유방을 만진다 거짓과 협잡에서 돌아와서도 온돌의 잠은 진실하다 맑은 물이 구정물 속에서 몸을 망쳐도 나무들은 빗줄기와 수직의 통..
[좋은 시]침묵의 소리 / 클라크 몬스타카스 침묵의 소리 / 클라크 몬스타카스 존재의 언어로 이야기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 만 알고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가슴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반사해준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마음 이..
[좋은 시]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 오규원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
[좋은 시]우포에서 / 나희덕 우포에서 / 나희덕 후두둑, 빗방울이 늪을 지나면 풀들이 화들짝 깨어나 새끼를 치기 시작한다 녹처럼 번져가는 풀, 진흙뻘을 기어가는 푸른 등 같기도 하다 어미 몸을 먹고 자란 우렁이 새끼들도 기어간다 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풀들 사이로 빈 우렁이 껍데기들 떠다닌다 기어가는, 그러나 묶여 있..
[좋은 시]종소리 / 정호승 종소리 / 정호승 사람이 죽을 때에 한 번은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새들도 죽을 때에 푸른 하늘을 향해 한 번은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나 죽을 때에 한 번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길에 핏방울만 남기게 될까봐 두려워라. 풀잎도 죽을 때에 아름다운 종소리..
[좋은 시]나사 / 김창제 나사 / 김창제 내 마음에 박혀있는 나사 조이면 조일수록 단단해지는 힘이다 산이 푸르름을 당기고 하늘이 구름을 당기고 꽃이 아름다움을 당기고 서로가 서로를 조으며 매양 오른쪽을 겨냥하면서 당기고 있다 세월에 헐거워진 사랑을 조으고 그리운 곳으로 추억을 당긴다 꽃이 꽃에게 사랑이 사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