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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운현궁, 그 아픈 뜰에 서서 / 김광영

운현궁, 그 아픈 뜰에 서서 / 김광영

 

 

 

늦가을의 인사동 거리는 스산했다. 울먹거리던 하늘은 비바람을 뿌렸고 잎을 털어버린 나목은 젖은 낙엽을 내려다보며 휘청대고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고궁을 향하는 마음은 헐벗은 나무조차 그렇게 아파 보이게 했다. 수많은 골동품 가게를 스치자 꽃담으로 둘러싸인 고궁의 위용이 저만치서 들어나고 있었다. ‘조선 26대 고종황제의 잠저이고,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던 저 터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그런 환란을 겪었던가.’ 생활의 공간이었지만 당시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던 운현궁의 정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들여놓지 못한 채 서있었다.

솟을 대문을 지나 <노안당> 뜰에 들어서자 몰락한 왕족으로 지냈던 이하응의 숱한 일화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기생 춘홍의 집에서 무전취식을 하다 군금별장 이장렴으로 부터 봉변당하던 이야기며, 상갓집마다 찾아다니며 흐트러진 행동을 보여 세도가 안동 김씨 가문으로부터 모멸 받던 사연하며, 그러면서도 아들에겐 조용히 왕의 법도를 가르쳤다던 흥선대원군의 밀사가 방 안 가득 채워진 듯하다. 서원 철폐와 세도정치 개혁, 그리고 쇄국정치로 숱한 원망을 받았던 흥선대원군의 사적 앞에 나는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가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던 것은 연약한 몸에 항체를 기르듯이 외세에 무방비한 정국을 지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서다. 그 깊은 뜻을 명성왕후가 너그럽게 간파할 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간절했다.

운현궁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심이 되는 <노락당>을 들여다본다. 이곳은 고종과 명성왕후의 가례를 치른 연회장이 아니던가. 흥선대원군은 이 노락당에서 며느리 명성왕후를 맞이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며 환대했을는지. 그러나 별스럽지 않는 가문에서 자란 민비가 그의 섭정에 그토록 대항할지를 누가 알았으랴. 어린고종을 왕좌에 올려놓고 대조비의 뜻에 따라 섭정을 했기로서니, 또 세자 책봉 때문에 갈등이 깊었기로서니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모든 것이 외척세력에 밀려나 몰락한 왕족으로 지내던 시어른의 한이란 것을 알고 품었더라면 그런 환란은 없었을 것을. 흥선대원군을 청나라에 납치시키게 한 사건이며, 서러운 세월 겪고 환궁한 그를 반 감금 시킨 야살스런 행동하며, 그러다가 <노안당> 큰방 뒤의 속 방에서 쓸쓸히 종말을 맞게 한 일들이 상상 속에 가득하다. 누구나 권세를 탐하면 그렇게 황폐해지는 걸까. 그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 했건만, 나는 왜 자꾸만 민비를 탓하는 마음만 이는 걸까. 그건 아마도 기고만장하던 패권도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것을 부질없는 야망 때문에 일본인의 손에 시해된 종말이 안타까워서 일게다.

그러나 운현궁은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험한 기운이라곤 들지 않는다. 곱게 흘러내린 추녀 선이며, 정교하게 짜인 문살들과 아담한 방, 그리고 무쇠 솥 엄전케 걸린 부엌의 구조가 그저 살갑게 느껴질 뿐이다. 어느새 나는 내가 바라는 ‘이로당’의 안주인을 상상의 붓으로 그리고 있었다. 기와담장에 해당화 넝쿨 올리는 소박한 봄날의 모습과, 모시옷 바삭하게 다려 입는 칠월엔 대발 틈으로 갈바람 기다리는 느긋한 자태를, 그리고 찬바람 이는 가을엔 창호 문에 단풍잎 덧붙이고 달빛 불러들이는 낭만을, 설한풍 휘몰아치고 싸락눈 내리는 겨울밤엔 방마다 솜이불 덮어주는 따사로운 여인으로 완성을 하자, 조선의 26대 국모가 차라리 이런 여인이었다면 피비린내 나는 화는 면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연약한 고종을 대신해서 권력을 쥐려했던 명성왕후의 처연한 종말이 새삼 아프기만 했다.

큰 나무 아래 묘목이 그렇듯이, 흥선대원군의 기백에 눌려 연약했다던 고종황재가 안쓰러우면서도 원망스럽다.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번쩍이는 눈빛만 닮았더라도 명성왕후는 여자로 살았을 것을, 결국 여자의 운명은 남자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절감하며 조선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운현궁을 물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