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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어떤 양심 / 박명순

어떤 양심 / 박명순

 

 

 

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집 가까이 돌아왔을 때였다. 방금 떠나온 호텔에서 매니저라는 사람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왔다. 빠진 축의금 봉투를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뒤에 따라오는 시동생에게 호텔을 다녀오라는 부탁을 하고 집으로 왔다. 우리 차에는 시골에서 오신 집안어른들이 타고 계셨기 때문이다.

손님들 술상을 차려드리고 큰 아들네 식구를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챙기고 있을 때 시동생이 돌아왔다. 시동생의 손에는 축의금 봉투가 한웅큼 들려 있었다. 우리 식구들과 고향 어른들이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봉투가 한 장이나 두 장 정도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시동생 말에 의하면 예식장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주워서 사무실로 가져왔다고 하였다.

요즈음 텔레비전이나 신문 보도를 보면 예식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 예식을 올리는 부산한 틈을 타 축의금을 몰래 훔쳐 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별별 속임수를 다 써서 남의 집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돌아온 축의금 봉투를 보고 대도시에도 그런 사람이 있냐며 시골에서 오신 친척들도 입을 모아 칭찬했다. 봉투 속에 든 축의금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쁜 시간 짬을 내어 우리 집 혼사에 와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뒤 인사도 못하는 것이다. 혹시나 그 사람들이 청첩장을 보냈을 때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몇 년 전 큰아들 결혼식 때의 일이다. 날씨는 더운데 긴 한복을 입고 하루 종일 서 있었더니 몸살이 났다. 그날 저녁 잠시 몸을 뉘이고 있는데 친정 막내 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신없이 큰일을 치르다 보니 내외분이 가시는 것도 몰라 내가 먼저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 고모의 전화는 나를 놀라게 했다. 낮에 예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어떤 할머니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법도 안 먹고 기운 없이 앉아 있더란다. 시댁 집안의 어른 같은데 알아보고 부부가 의논해서 목걸이를 해주라고 했다. 고모는 당부를 하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너희 엄마도 그런 상황을 봤으면 물어주라고 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식구들과 의논을 했다. 모든 일에 ‘법’ 을 앞세우는 철없는 아들과 딸은 자기가 잃어버린 물건을 왜 우리가 보상을 해야 하냐며 반대를 했다. 아흔이 가까운 시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운 집이니 목걸이를 해주라고 하셨다. 역시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세상을 더 오래 산 어른의 말씀을 존중하기로 결정을 했다.

시아버지의 말씀대로 순금 목걸이 다섯 돈을 만들어 집안 어른께 갖다 드리니 미안해하면서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시골 할머니는 잃어버린 목걸이가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아들 결혼식 보려 왔다가 잃어버렸다고 원망을 할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금값이 날만 새면 치솟는 지금 모르는 체 하고 있었다면 그 할머니는 아마 속병이 났을 지도 모른다.

사람이 하루 종일 길을 가다 보면 소도 보고 스님도 본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한평생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는 요즘 양심(良心)이란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양심을 지키고 산다는 것이 말로는 하기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남의 목걸이를 감쪽같이 떼어 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축의금 봉투를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준다. 형편이 좋은 사람이라면 예식장 청소를 하겠는가.

가진 자가 더 갖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다가 남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으니 봉투를 챙겨도 그만일 터인데 굳이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던 마음이 고마웠다. 주운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아주머니가 고맙게 생각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양심이란 낱말이 점점 잃어가고 있어서일 것이다.

며칠 후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예식장에 갔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손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편의 실직으로 두 아들의 학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아주머니는 그저 평범한 이웃사람 같았다. 고맙다는 인사에도 당연한 일을 했다며 바쁘게 자기 할 일만 하셨다. 손 끝에 부지런함이 베어난다. 부지런하고 천성이 고운 사람이니 아주머니는 아마 그 직장에서 오래도록 일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스스로 그만 둘 때 까지는 일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