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다래헌 / 최진옥

다래헌 / 최진옥  

    


 

다래헌(茶萊軒), 내가 처음 차를 접한 곳이다. 봉은사 깊숙한 곳에 법정 스님이 거처하시는 다래헌이 있었다. 대학시절 불교에 심취하여 자주 절을 찾아다녔다. 그중 봉은사는 내 젊은 시절에 큰 영향을 미쳤던 곳이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으면서 속세와 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70년대 초, 봉은사에 가려면 뚝섬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나룻배가 강 건너편에 있을 때는 소리치면서 손을 흔들면 사공이 노를 저어 다가와 강을 건네주었다. 나룻배를 타고 봉은사에 갈 때마다 나는 고뇌가 가득한 일상이 뒹구는 차안(此岸)에서 심신의 안정과 평온함이 깃든 피안(彼岸)의 세계로 가는 기분을 느꼈다.

우선 복잡하고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버스 종점에 내려 강을 건너면 눈앞에 배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맑은 공기와 자연이 주는 신선함에서 한차례 때를 벗는다. 대웅전에서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무릎을 꿇으면 스스로 겸허해진다. 참배를 마치고 다래헌에 들르면 스님이 차 한 잔을 내주셨다.

학교 앞 다방에서 커피나 홍차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블랙커피를 즐겼으며 홍차에 위스키 한 방울 타서 마시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처음 접해 본 작설차는 새로운 경지였다. 우선 다래헌의 정갈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깊은 산사 같은 느낌이 들었던 봉은사 내에서 또 다래헌은 특별했다.

후박나무가 정감 있게 서 있는 다래헌 내에는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샘물이 있었다. 샘물을 조롱박으로 떠다가 차를 달이는 것이 신기했고, 다기에서 풍기는 아취에 매료되었다.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고요해지며, 한 모금의 차를 넘기면 여유가 생겼다. 스님이 일러주신 다도는 요란스럽지 않고 틀에 박히지 않아서 편안했다.

스님에게서 다도를 익히면서 나는 차 맛을 알게 되었고, 하를 마시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차 한 잔과 함께 스님이 해주신 많은 이야기들은 굳이 설법이라고 이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창 인생을 고민하던 시절, 그 답을 찾는 여정을 기꺼이 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다래헌에는 법정 스님과 스님이 주시는 차 한 잔이 있었다. 그 차의 의미는 두고두고 음미해야 했다. 스님은 다래헌을 찾는 사람들에게 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나하셨다.

차선일미(茶禪一味), 그 뜻은 늘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