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사(望海寺)의 시름 / 이양선
지평선을 가르는 바람이 상쾌하다. 도로 양쪽에 핀 코스모스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김제평야는 황금빛 절정을 이루고 있다. 유년의 뜰로 거슬러가는 기분이다. 벼에서 단내가 난다. 알알이 익은 벼이삭만큼 지난여름 흘렸을 농부들의 땀이 그려진다.
머지않아 사라질 가을을 가슴에 담는 사이 심포(沈浦)가 눈에 들어온다. 군산과 부안 사이의 서해 바닷자락을 낀 자그마한 포구, 우리나라 백합의 팔 할이 생산되는 곳, 백합구이 생각에 입 안엔 군침이 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 왁자해야할 소리가 한가롭다. 손님을 서로 붙들려는 풍경이 썰렁하다. 포구를 따라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해산물 가게 앞에는 해삼이며 개불, 그리고 전복과 다양한 조개를 파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특히 백합 자루를 높이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겨우 몇 집만 길목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시월 초순인데도 그 모습이 자못 추워 보인다. 그 뒤로는 철시한 오일장처럼 횟집들이 뼈대만 선 채 시름에 잠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주인 잃은 대형 파라솔들이 날개가 접혀 끈으로 묶인 지 오래인 듯 먼지가 수북하다.
허허로운 마음에 눈길을 바다로 돌린다. 새만금 공사로 바닷물이 사라져가는 심포는 군데군데 널따란 모래들이 형성되어 썰물 때 같다. 그 위를 다리 긴 한 무리의 새가 잠방잠방 걸어 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바다를 잃어 갯벌에 쉬고 있는 어선들이 나른한 햇살에 졸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서해의 바람만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호객행위조차 실종된 심포는 더 이상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몇 사람만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들도 오래지 않아 하릴없이 자리를 내주어야 할 터.
바닷물 따라 백합도 사라지고 따라서 어민들도 떠난 심포, 먼저 간 그들을 아픔으로 배웅했을 포구도 서서히 떠날 채비에 발걸음이 무겁다. 바다를 믿고 대대로 둥지를 틀었던 어민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백합구이 먹을 생각을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물이 빠진 자리에 별천지가 들어선다한들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애달픔이 삭여질까. 원하든 원치 않든 개발은 어느 한쪽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심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뒤돌아 봐진다.
발걸음은 어느새 진봉산 자락으로 향한다. 청량한 소나무 숲길을 얼마간 휘돌아가자 언덕 아래 아담한 망해사(望海寺)가 나타난다. 여느 사찰의 웅장함에 비해 서너 채로 단출해서 오히려 정감이 간다. 백제 의자왕 때 부설거사가 지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앞마당은 심포를 비롯해 망망대해의 수평선을, 뒷마당으로는 김제평야의 지평선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길목을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언제나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망해사는 변해가는 세상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당 한 쪽에는 토란 대와 호박나물이 따사로운 햇살에 말라가고 있다. 그 옆에서 비구니 스님 둘이 앉아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누며 솔잎을 따고 있다. 사위가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하다.
도도히 흐를 물결 대신 바다를 잠식해가는 개펄을 보며 옛 모습에 잠긴다. 마음이 산란할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곳에 와 있었다. 조개 캐는 구경에 한동안 정신을 빼앗기다 보면 서서히 차오르는 물과 함께 먼 바다로 드나드는 어선들이 분주했다. 뱃고동 소리와 뒷마당의 댓잎 부딪히는 소리에다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까지 어울려 절집은 고요 속에서도 바빴다. 때마침 바다로 지는 석양을 숨죽여 보노라면 세상의 모든 의식을 이곳으로 집중시킨 듯 경건했다. 잔잔한 물결 위에 퍼져가는 노을빛 수채화가 마음에 덕지덕지 낀 잡념을 씻어 내는 정화의식 같았다. 선홍빛을 등에 진 종루의 실루엣에서 고요한 무념의 여백이 풍겨나고 있었다. 종루는 원래부터 자연과 하나 되어 거기 그 자리에 오롯이 서 있었던 것처럼 자태가 단아했다. 그 모습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말갛게 행구어져 돌아오곤 했다.
이제 그 정경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몇 년 뒤 망해사 앞마당에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그 위안을 얻을는지 모르겠다. 훗날 손자 녀석과 함께 온다면 이곳이 예전에는 모두 바다였었다고 말하겠지. 여기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앞으로는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사가 아니라 바다를 그리워하는 망해사가 되겠다. 일찍이 선인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망해사(望海寺)라 명명했을까. 바다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늙은 팽나무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나이테에 새기고 있겠지.
범종은 이제 무엇을 위해 울려 퍼질까. 이곳 어민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 훗날 새만금이 탄생했으니 부디 잊지 말라고 할까. 문명의 이기로 점점 사라져가는 향수만은 기억해 달라고 할까. 바다가 있어 더 풍치가 느껴지는 망해사는 속절없이 그 쓸쓸함을 견디고 있다. 한 자락 지나간 바람에 풍경소리마저 서럽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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