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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풀꽃이 되어 / 정목일

풀꽃이 되어 / 정목일  

 

 

 

나의 수필은 가야 토기였으면 한다. 청자나 백자처럼 우아하고 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자기磁器가 될 수 없다. 고려청자에는 우리 나라의 해맑은 가을 하늘이 얹혀 있다. 조선 백자에는 봉창 문을 물들이는 달빛의 맛, 순백의 선미禪味가 깃들어 있다.

나의 수필은 그냥 토기였으면 한다. 토기는 청자나 백자와 같이 흙으로 빚었지만 매끄럽지 않고 눈을 끌지도 않는다. 청자가 장미라면 백자는 난이요, 토기는 이름도 없는 풀꽃일 것이다. 나는 아무런 기교도 없이 그냥 손으로 빚어 만든 토기 항아리에 더 정감을 느낀다.

문명의 얼굴을 쓰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는 토기는 천 년 전의 손길과 진솔한 마음을 그대로 전해 준다. 토기 항아리엔 수천 년 전의 풀내음과 인간들의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빗살무늬 하나에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 짐승들의 뒤를 쫓던 숨소리, 들판에서 듣던 풀벌레 소리가 잠겨 있다.

자기는 흙을 빚어 천삼백 도 정도의 온도로 구워 낸다. 흙이 불 속에서 하나의 자기로 될 때까지 도공들은 자신의 영혼과 솜씨를 불에 태운다. 흙이 화염속에서 자기가 될 때까지 도공들은 신열 속에 자신을 태우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나 빛깔은 재주나 지혜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흙과 불과 도공의 영혼과 신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보태어졌을 때라야만 명품을 얻을 수 있다. 성자이되 고려인의 마음이 맑게 비치는 신비스런 하늘빛은 아무리 마음을 맑게 닦아 낸 도공일지라도 빚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달빛을 보듯, 한 그릇의 정화수를 대하듯 부드럽고 고요한 백자의 빛깔을 불 속에서 완성하는 일은 자신의 재주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흙과 불과 도공의 영혼이 어떤 영감을 얻어 일체감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무릎을 치는 명품 한 점을 얻을 수가 있다.

나의 수필은 그냥 덤덤하고 수수한 수필이길 바란다. 아예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지지도,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열성과 인내도 없을뿐더러 솜씨마저 시원하지 못하다. 그냥 소박하게 흙으로 마음대로 주물어서 빚고 싶다. 이 세상에 남겨 놓아야 할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부리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빚고 싶다.

하지만 흙은 좀 가려 쓰고 싶다. 내가 나서 자라던 고향 언덕의 흙, 동무들과 어울려서 뒹굴던 들판의 흙, 그리고 내가 묻힐 땅의 그 흙으로 빚고 싶다. 그래야만이 나의 토기에는 나의 고향과 생각과 생명이 담겨질 것만 같다. 결국 내가 태어나서 돌아가야 할 곳은 흙의 품인 것을 알기 때문에…….

토기 항아리에 담긴 물, 풀꽃이 내 생각이며 나의 세계이다. 문장을 가다듬는 일은 일생을 수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문장은 곧 좋은 인품과 사상과 인생관을 포용한다. 완숙한 문장이기보다는 서툴러 보이나 개성적인 문장을 쓰고 싶다.

문장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물을 보는 눈과 느낌이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사물에서 나만의 발견, 어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내 나름대로의 발견법, 나만의 명상법, 그리고 조촐한 미학을 어떻게 진실되게 형상화 시켜 놓을 수 있을까. 나는 표현보다는 먼저 발견과 명상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마음을 맑게 닦아 뭇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두는 것이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길임을 터득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수필은 고상하지 않으나 속되지 않고, 다정한 벗님의 편지를 받아 읽을 때처럼 그리움을 전해 주길 원한다. 국화꽃 곁에서 읽는 벗님의 편지글에서처럼 잊었던 추억의 등불이 켜지고 다시금 순수한 정의 샘이 솟아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