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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산길을 읽는다 / 신진숙

산길을 읽는다 / 신진숙  

 

 

 

도시의 건조함을 잊게 하는 작은 숲길을 찾았다. 실은 하도 낮은 산이라 마냥 미뤄놓은 집 앞의 산책로다. 그랬던 그 길이 요즘 내게 평온한 시간을 선사한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내 마음의 길을 새로이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이젠 즐겨 다녔던 직선의 넓은 공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작용이다.

숲이 훤히 제 몸을 드러내고 있는 계절이라 길의 호흡이 그대로 와 닿는다. 경사가 완만한 구불구불한 흙길에서 흔적을 읽는다. 누군가의 흔적으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네 살이 또한 주고받는 호흡의 관계다. 길은 곧 소통의 의미이니,

산길을 천천히 오르다보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왠지 가보고 싶어지는 오솔길도 있고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길목도 만나게 된다.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으로 들어서는 일도 그와 같으리라. 더러는 돌아 나와야 하는 외길도 있고, 가까운 데를 한참 돌아서 가기도 하고, 호젓한 사잇길에 한눈을 팔기도 한다.

산을 찾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봄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숲이 진달래 개나리 빛으로 화색이 도는가 싶더니 이내 신록이 살금살금 자릴 잡고 들어선다. 신록이 만들어내는 길의 변화가 새삼 재미나다. 보랏빛 제비꽃, 샛노란 애기똥풀, 등 앉은뱅이 들꽃들은 그대로가 아름다운 문장紋章이다. 은은한 고유의 언어를 읽는다.

이상 고온 탓에 여린 초록의 숨소리가 가빠진다. 숲길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 생경하기까지 하다. 길의 기억이 갑자기 아득히 사라져버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최근 기억의 근간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푸념을 해대긴 했지만 발밑에 펼쳐진 그 낯설음이 어이가 없다. 비약하자면 어제인 듯 오늘인 듯싶다. 익숙했던 길에서의 이런 착각은 어쩌면 하루하루가 정말 다른 세상의 길인지도 모른다는 상상마저 들게 한다.

부드럽고 화창한 명지바람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나무들을 볼 때면 꼭 스무 살 시절 같다. 스무 살이 품었던 기억의 그늘은 그야말로 아스라하다. 누군가는 오월을 가질 수 있다면 다른 달은 없어도 된다고 극찬했지만 오월이 그토록 빛나는 것은 다른 계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청춘에서 멀리 비껴가 있을수록 절실히 느끼게 되지 않던가.

송홧가루, 아카시아 향기가 산길 곳곳에 뿌려지고 있다. 이제 꽃들은 지고 향기로 채워지는 숲이다. 아마도 마흔 그 즈음, 나의 산길이 이러하지 않았을까하여 공연한 웃음을 흘려본다. 내가 길을 잃었던 때는 분명 황량한 겨울 숲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려진 것 하나 없이 온통 길 뿐인데 어찌 길을 잃었으랴. 신록의 빛으로 눈멀었거나 숲 향기로 길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수려한 나무 그늘에 한없이 앉아 있었던가, 옷깃을 잡는 소슬바람과 울음 같은 단풍도 한 몫 했으리라. 나는 이내 그럴듯한 변명을 한다. 살다보면 목적지보다 도중에 만나는 길의 풍경에 마음 끌릴 때가 있는 거라고, 그로써 충분하다고.

내가 산길에서 미처 읽지 못한 길 하나를 어느 시에서 발견한다. 나무의 길이다. 나무는 계단이 되어 비탈진 산길을 편히 오르내리게 하고, 비가와도 흙이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으로 누워있다. 나무의 그런 쓰임새를 보며 이 시대에 나무 같으 사람이 그립다는, 시인의 마음 길을 따라가 본다.

혼자 걷는 숲길은 내면의 고독을 만나는 시간이다. 걷다보면 생각의 걸음도 차분해지다. 이상하게 생각이 고요하지 않을수록 마음을 온전히 싣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산을 내려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명료했던 그것들을 간단없이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 내성 때문에 수시로 자연을, 산을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자연에 귀의한 이들을 보면 몸 전체에 선함이 그대로 배어나오지 않던가. 마치 수도사들의 그것처럼.

문득 멈춰 서서 나무의 상처를 읽는다. 뿌리 깊은 나무 그 이상으로 보인다. 척박한 땅일수록 줄기가 휘고 뒤틀리며, 옹이 박혀가며 꿋꿋이 서 있다. 하늘을 향해 뻗어간 가지만큼이나 흙 위로 드러난 뿌리의 몸에서 강한 생명력을 본다. 뿌리마저도 길이 된다.

아마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면 자연과의 감응感應을 더 많이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수천, 수 백 년이라는 시간의 내공으로 만들어지는 숲의 흙은 자연의 보고다. 그 깊은 것들을 나의 시선으로 담으려하니 당연히 어설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르는 게 어디 산에서 뿐이랴. 아직 내가 읽지 못한 길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알아 가리라. 내 마음 닿는 곳이 많아지는 날, 천지사방이 나를 향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만나게 되리라.

길을 무작정 따라가라 했던가. 가다보면, 쉬다보면 길이 보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