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그 여자의 자서전 / 손훈영

그 여자의 자서전 / 손훈영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낮고 냉랭한 말투였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명절날, 번잡함을 피해 잠시 옆방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때였다. 시어머니는 누워 있는 그녀 머리맡에 거두절미 한 마디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의 눈에 그러하듯 그녀도 별로 탐탁찮은 며느리였다. 안 그래도 그리 달갑지 않은 며느리가 부지런히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터억 하니 누워 책이라는 것을 읽고 있으니 얼마나 성에 차지 않았을까. 지금 같으면 그저 웃어 버리면 그만인 말 이었으나 갓 서른밖에 되지 않은 생속의 그녀는 굉장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한시 반시 놀지 않고 평생을 바지런히 일해 오남매 모두 어엿하게 키워 놓은 시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보는 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짐만 되는 하찮은 물건일 뿐이었다.

책과 함께한 그녀의 세월을 되돌아 볼 때 과연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나오지 않았다. 허나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돈보다도 다른 무엇이었다.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얽매인 마음을 풀어내는 일이 더 다급했다.

신경이 부실한 혈육은 영원한 족쇄였다. 아들이 없는 친정은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친정식구들의 기대와 자신의 욕구는 전혀 일치시킬 수 없는 것 들 뿐이었다. 인간이기에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병든 혈육과 함께 모욕과 상처로 점철된 삶이 이어졌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나날에 지쳐갔다.

도피하고 싶었다. 절실히 위로가 필요했다. 그 마음이 책을 펼쳐 들게 했다. 책 읽기에 빠져 들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살림 하는 틈틈이 책을 읽었다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책 읽는 틈틈이 살림을 했다.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세상 다른 재미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기 위한 시공간의 확보를 위해 동동거리다보니 살림살이에 등한해 B급 주부라는 달갑잖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읽기만 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쓰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더라면 아마 글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하는 전업 작가도 아니면서 글에 대한 강박과 초조로 이리저리 서성댔다. 글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아갔다. 왜 하필 이런 버거운 상대를 택했을까. 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이 글이라는 놈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그녀는 홀로 밥을 씹으며 곰곰 해졌다.

‘이유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 가장 진실에 가까운 답이었다. 어느 날 돌아보니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사물이 책이었기에 글이 글을 유도했다고 하면 이유가 되었을까. 먹으면 배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듯 ‘읽으니 써야 했다’라고 말하면 다소 시건방진 말이기는 하나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산다는 일은 언제나 미궁이었고 끝내 허무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무에 대적할 의미창조가 절실히 필요했다. 글쓰기는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는 무기력에 대항하는 한 방법이 되어 주었다. 언어를 켠다는 것은 마음을 켠다는 것. 쓴다는 것은 그녀안의 불 지피기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작은 반딧불 하나 가슴에 보듬는 일이었다.

쓰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읽지 않으면 쓸 수 없었기에 읽기와 쓰기는 당연히 한 몸 이었다. 집중해서 읽고 있노라면 서서히 그녀 마음 속 누군가가 깨어났다. 그 누군가는 생기발랄하고 억압되지 않은 싱싱함으로 약동했다.

그녀 속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나 싶은, 내면 깊이 무의식의 갈피 속에 감추어져 있던 말과 이야기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언제나 신과 짐승 사이를 줄다리기 하는 존재로서의 그녀였지만 읽고 있을 때만은 짐승이 죽고 신의 얼굴에 더 가까워졌다. 책을 읽다 느닷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은 압축된 그녀의 미사요 영혼의 고해성사였다.

읽고 쓴다는 일은 그랬다. 불타는 세계도, 배고픈 이웃도 ,그 아무도 구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소한 그녀 자신만은 구했다. 몰두해서 읽고 쓰는 과정 속에 모든 보답과 보상이 다 들어 있었다. 글을 통한 자기표현과 자기 고백이야말로 구원이자 유일한 출구였다. 평화와 고요에 다다를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가 돼주었다.

단지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작정 뿌듯하기만 하던 시간이 흘렀다. 글쓰기에 대한 회의가 왔다. 읽기만으로 만족했다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이따금 들곤 했다. 머리에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심장에서 폭발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고작 A4 두 장의 원고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때때로 그녀가 읽은 금강석 같은 명작들이 그녀가 애써 만들어 놓은 원고를 비웃었다. 자주 스스로 문학적 재능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랬기에 자신의 A4 두 장을 굳이 문학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 속에 가득 찬 무거움과 암담함을 해소하기에는 문학적 장치가 한가하게 느껴졌다. 속에서 부글거리는 그을음을 걷어내는 일이 너무 시급해 그냥 막 발설했다. 그녀에게 쓴다는 행위는 문학이전에 하나의 생짜배기 발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그녀는 쓴다. 발설을 넘어 문학을 향하여 훠이훠이 걸어간다. 그 길을 걷노라면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 소리와 빛깔들이 그것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선명함을 지닌 채 가슴에 와 닿곤 한다. 그 선연한 순간들은 그녀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녀의 인생을 밝힐 것 인가.

*산다는 것은 그런 것.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이 있어도 머리 위에는 항상 위협이 도사리고 있고 생명은 괄호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그렇다. 삶이 유한하기에 오늘도 그녀는 쓴다. 그녀 삶의 보고서를 쓴다. 이것이 그녀의 현존이고 목숨이라고 화인을 찍듯 또박또박 기록을 한다. 글쓰기가 주는 외곬의 힘으로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인식의 기쁨으로 그녀는 떨리고 몰두와 집중으로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다. 행복한 날이면 알코올이 스밀 때의 따스함으로 글을 쓰고 불행할 때면 술이 깰 때의 그 한기와 쓸쓸함으로 글을 쓴다. (17매)

 

*인용-시몬느 드 보브와르: 프랑스 작가 <제2의성>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