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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동박새 / 김길영

동박새 / 김길영 

 

 

  곤줄박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사는지 나는 잘 모른다모양새가 비슷한 동박새는 조금 친한 편이다동박새를 처음 만난 것은 진도 첨찰산 쌍계사에서였다내가 그 절에서 봄 한 철 기거하는 동안 동박새와 아침저녁 숨바꼭질 했던 터라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동백꽃은 동박새를 떠올린다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빨거나 열매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진도 쌍계사 주변에는 수 백 년 묵은 동백 숲이 하늘을 가린다절 뒤편 첨찰산 ‘천년의 숲에 들어가 보면 희귀종 수종들과 동백 숲이 장관을 이룬다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동백꽃이 피고 진다.

  동박새의 등은 녹색이고 날개와 꼬리는 녹갈색이며 아래꼬리를 덮는 깃은 황록색이다배와 눈 둘레는 하얗다그들은 번식철 외에는 모여 산다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동백의 꿀을 좋아해서 개화기에 모여든다날아오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는 쮸 쮸 찌이 찌이 찌이 찌이 쮸 쮸 찌이 찌이 찌이’ 소리를 낸다경계를 알리는 소리는 킬 킬 킬’ 음색이 급하다.

  동박새는 무리 지어 살지만 대체로 암수로 짝을 지어 활동한다열대 지방에서 새가 중요한 꽃가루받이 매개체이듯이 동백꽃은 동박새의 도움을 받는다새에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는 꽃들은 동백꽃처럼 강렬한 색조를 띠지만 향기가 미약하고 꽃잎은 단단하다그래서 동박새가 꿀을 빨기 위해 동백꽃 깊숙이 부리를 꽂다 보면 꽃의 목 부분이 댕강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진도 쌍계사에서 기거하는 동안 본의 아니 게 동박새를 유심히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다절에서 먹고 자는 식구가 몇 사람 되지 않아 눈에 보이는 대로 일을 찾아 해야 했다사찰 의식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인시寅時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세수하고 종을 치고 마당 쓸기 순서로 진행하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다.

  절 마당 초입에는 한 그루 우람한 동백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대빗자루로 마당을 쓸다보면 밤새 떨어진 동백꽃잎을 쓰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았다쓸고 나면 또 떨어지고 쓸고 나면 또 떨어졌다동박새는 아침 일찍부터 동백꽃 속의 꿀을 빨기 위해 동백꽃 목을 부러뜨렸다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붉은 동백꽃잎을 마당에 흥건하도록 펼쳐 놓았다얄미운 동박새는 나하고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허겁지겁 날아갔다가 금세 날아와 나의 수고를 재촉하곤 했다.

  동백나무는 동박새가 있어 외롭지 않다여기 와서 알게 된 전설이지만먼 옛날 어느 왕국의 왕은 후계자로 삼을 아들이 없어 고민했다왕의 동생은 건강하고 훤칠한 아들이 둘이나 있었다왕은 혹시 내가 죽고 나면 저 두 조카 놈들 중에 한 놈이 왕위에 오르겠지 하며 밤잠을 설쳤다꿈결에도 불안했다왕은 조카들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왕의 동생은 형의 심사를 알아채고 두 아들을 데리고 멀리 도망쳐 숨어 있었다숨어 있어 본들 손오공 손바닥이었다.

  왕은 전국에 명을 내려 동생과 조카들을 잡아들였다그리곤 바로 참살해 버렸다그때 죽은 영혼들이 아버지는 동백나무가 되고 두 아들은 동박새로 환생했다그래서 동백꽃이 피면 동박새는 아버지 나무에 앉아 꿀도 빨고 열매도 먹고 슬픈 노래도 부른다.

쮸쮸 찌이찌이찌이’ ‘킬 킬 킬’ ‘쮸쮸 찌아 찌아 찌이’’

 

동박새야!

이제 그 슬픈 울음일랑 멈춰라.

눈물도 거둬라.

첨찰산 너머 불어오는 갯바람 타고

훨훨 날아 보거라.

너희를 어여삐 여겨

부처님도 내려다보고 있지 않느냐.

좋은 날 잡아

아랫마을 진도씻김굿 무당 모셔다

굿판 한 번 벌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