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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태그매치Tag match / 김단

태그매치Tag match / 김단

 

 

해가 중천에 떴는데 기척이 없다. 빼꼼히 방문을 열고 안의 동태를 재빨리 살핀다. 이불이 규칙적으로 들썩거린다. 휴~ 다행이다. 살아 있네! 다음은 무관심이다.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밤늦게라도 잊지 않고 집에만 들어오면 된다.

난 아침형 인간이고 그는 올빼미족이라 아침은 각자 해결이다. 난 내 방에서 소리로 그의 행동반경을 감지한다. 저녁이 되면 말없이 서로의 얼굴은 보지 않고 밥 먹는 일에만 전력을 다한다. 밥에 돌이라도 들어갔는지, 반찬에 머리카락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며. 그는 문간방에서, 난 거실을 독차지하고 TV를 본다. 어차피 선호하는 채널이 달라 같이 볼 수 없다. 예전엔 보고 싶지 않은 프로도 무심히 정답게 같이 보았지만, 거실 스탠드를 켜놓고 내가 안방으로 들어가면 그는 문간방에서 나와 새벽녘까지 TV를 본다. 프로 레슬러들이 태그매치(Tag match)를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직은 한 편이다.

그는 내 행동반경에 관심이 많지만 난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다. 눈꼽만큼도 들키기 싫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어느 날은 시커면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가니 귀신인 줄 알았다며 화들짝 놀란다.

구름이가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또 고개를 돌려버린다. 눈을 보면 마음이 아파 외면해버린다. 구름이는 15살 된 말티즈 노령견이다. 생후 2개월에 우리 집으로 왔다. 기가 펄펄 살아 주인도 물고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던 녀석이 기운이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있다. 그가 눈을 감고 있으면 말을 건다.

"구름아, 미안해, 사랑해."

그들의 가련한 모습에 내가 보인다. 난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자신이 없다.

밖을 본다. 사람도 차도 바삐 움직인다. 세상은 저리도 분주한데 집안은 미동조차 없다. 사람이 사는 집인가! 이 집은 소리만 살아있는, 아니 소리를 죽이는 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마이너스 20.3데시빌 수준의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소리가 죽으러 가는 곳'이 있다고 한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공간의 과학적 명칭은 무반향실(anechoic chamber)이다. 빈 공간에서 공기분자끼리 부딪히는 소리,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그 작은 소리가 '마이너스 23데시빌'이다. 이 특별한 공간은 다양한 음향 관련 연구에 사용되는 공간인데, 소리가 반향을 일으키지 않고 입에서 말이 나오는 순간 사라지는, 마치 베개에 대고 소리 지른 느낌이라고 한다. 이런 무음의 공간에서 견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단다. 사람이 무반향실에서 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틴 시간은 45분이었다고 한다.

'소리가 죽으러 가는 곳'이라니? 대체 누가 이런 치명적인 표현을 했을까?

소리를 내지 않으니 반향될 소리도 없는 내 방이 무음의 공간, 무반향실의 방이다. 물리적인 장치를 한 완벽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무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쓴 것은 어쩜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난 45분이 아니라 4시간 50분도 거뜬히 견딘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무반향실 속의 부부'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았다. 대화가 필요하면 말을 하지 않고 이메일로 한단다. 불가능할 일이라고 흘려버린 이야기가 내 일상이 되고 있다. 난 어쩜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니, 그도 소리를 내지 말라고 암묵적인 압박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소리를 죽이는 나를 위해 자신의 소리도 죽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죽으러 가는 것은 내가 아니고 소리다. 난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그를 죽일 이유도 없다. 우린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살아야 하고 소리도 살려야 한다. '소리를 죽이러 가는 곳'은 '살기 위해 가는 곳'이다. 우린 아직 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