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꽃 / 왕린
광희를 보았다. 짧게 올려친 머리를 보니 제대 무렵인 것 같다. 훤한 이마와 짙은 눈썹, 서글서글한 눈매. 그 사진이 어떻게 내 앨범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푸르던 날의 기억 속에서 웃고 있다.
광희는 나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초등학교 때, 장사를 하던 고모는 여름방학만 하면 그 애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가셨다. 할머니가 계시고 또래가 있는 곳에 맡기는 게 마음이 놓이셨나 보다. 광희는 나보다 한 살이 적은데 키는 한 뼘이나 더 컸다. 희고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을까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은근히 그 애를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다.
광희는 남자아이치고 꽃에 관심이 많았다. 들에 나가면 지천인, 그 흔한 들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괭이밥, 메꽃, 쑥부쟁이도 그 아이가 알려 준 후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광희는 달개비꽃을 유달리 좋아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부터 나도 그 꽃이 좋아졌다. 나는 그 애를 앞세우고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느라 여름내 땀띠를 달고 살았다. 그 애가 오면 여름 긴긴 해도 짧기만 했다.
우리 집 울안에는 꽤 넓은 텃밭이 있었다. 밭 가장자리에는 단수수가 호위병처럼 늘어서 있었다. 무더위가 막바지 숨을 몰아쉴 즈음이면 단수숫대 이삭도 적갈색으로 영글어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그것을 베어다 토막을 내주셨다. 알차게 여문 것은 껍질을 벗길 때 ‘쫘악’하고 명쾌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아싹, 베어 물고 속살을 씹으면 입안 가득 단물이 고였다.
단수수는 같은 줄기에서 잘라낸 것이라도 가운데 부분이 특히 달았다. 그걸 잘 아는 할머니는 물고 뽑은 듯한 미끈한 놈을 광희한테 먼저 건네셨다. 맛있는 것은 언제나 첫 손녀인 내 차지였는데 그 아이가 오면 달라졌다. 나는 광희랑 손발이 맞아 잘 놀다가도 그럴 때면 앵돌아지곤 했다. 심통이 나서 씩씩거린다는 걸 알고 광희는 제 몫을 껍질까지 벗겨 할머니 몰래 내게 넘겼다.
‘그럼 그렇지, 우리 거잖아.’
나는 당연한 듯 날름 받으며 속으로만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나를 눈꼴사나워하기는커녕 내가 베어 무는 것을 보고서야 자기 먹을 것을 벗기는 광희를 볼 때면 쟤는 배알도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단수수 가락을 들고 감나무 밑 대나무 평상으로 갔다. 땡볕을 삼켜버린 그늘 밑에서 단물을 야금거리노라면 마치 딴 세상에 든 것 같았다. 떼쓰는 아이의 울음 같은 매미 소리조차 시원하게 들렸다. 수숫대 찌꺼기를 뱉어 놓은 곳에는 개미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우리는 함정을 만들어 개미들을 유인하고, 여왕개미가 사는 소굴을 찾겠다고 평상 밑으로 들어가 땅을 헤집어 놓기도 했다. 또 단단하고 미끌미끌한 껍질을 격자로 엮어 돗자리를 만들거나, 껍질을 구부려 안경이나 동물 모양을 만들며 놀았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그 아이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단수수는 한갓 꺽다리 풀에 불과했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우리는 서울로 이사했다. 자연히 광희를 만날 수 없었다. 간간이 어른들을 통해 소식을 들을 뿐이었다.
광희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몇 년이 흐른 후였다. 밖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우리 집 담벼락에 붙어서 안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바로 알아봤다. 광희였다. 키가 훌쩍 커버린 그 애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키가 멈추어 버린 듯한 나를 보고 머쓱하게 웃었다. 재수하려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자취방 구할 여건이 아니었는지 광희는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거처할 방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겨우 다락방을 내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일요일, 부추전을 만들며 광희를 불렀다. 광희는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식은 떡 떼어먹듯 생각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올려다 주라는 엄마 성화에 전 몇 장을 들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광희는 엎드려서 책을 보다가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구석에 쌓인 잡다한 세간들만큼이나 옹색하고 구중중해 보였다. 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먹고 싶지 않다는데 왜 올라왔느냐고 고추 먹은 소리를 했다. 서슬에 눌린 나는 전을 먹어 보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바로 내려오지도 못한 채 무르춤하게 앉아 있었다.
누기 찬 다락은 빗물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노는 소린지 싸우는 소린지 아래에서 떠들어대는 동생들 목소리가 빗발에 징이라도 박혀 있는 듯 거칠고 사나워진 빗소리와 섞여 난장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집안 가득 퍼진 기름 냄새까지 역겹게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외출했다가 돌아와 대문을 두드리는데 광희가 나왔다. 식구들은 이모네로 저녁 먹으러 갔다고 했다. 광희한테 이모, 나한테는 고모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같이 가지 그랬냐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광희가 말허리를 잘랐다.
“그냥.”
저녁은 먹었느냐는 내 물음에도 ‘응’이나 ‘아직’이라는 말 대신 또 “그냥”이라고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가스레인지 위에 데울 찌개부터 올렸다. 반찬을 주섬주섬 챙겨 놓고 밥을 눌러 담아 막 돌아선 순간에 광희의 눈과 마주쳤다. 눈으로만 말하는 초식 동물, 속눈썹이 젖은 낙타 눈빛이 거기 있었다. 이상했다. 그 눈빛을 봤을 뿐인데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밥그릇을 내려놓지도 어쩌지도 못하고 서 있는데, 상 앞에 앉아 있던 광희가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인가를 호루라기 불 듯 휙 내뱉더니 거실 유리문을 사납게 밀치고 뛰쳐나갔다.
나는 된통 얻어맞고서도 왜 맞았는지를 모르는 사람처럼 얼이 나가 버렸다. 찌개가 냄비 바닥에 졸아붙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애가 뱉어낸 토막말을 꿰맞추려 애를 썼지만,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식구들이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도 광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두드리는 대문 소리를 듣지 않으려 일찌감치 자리에 누워버렸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곤 해도 귀는 아마 대문께 걸어 놓았을 것이다. 결국,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에서 깼을 때는 오밤중이었다. 광희가 들어왔나 걱정이 됐다. 현관에 광희 신발이 놓여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 후, 난 집에 있을 때도 되도록 광희 눈에 띄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음악을 듣다가도 덩치는 산만한 애가 갑갑한 곳에 구부리고 앉아 책과 씨름하고 있겠지 싶으면 소리를 줄였다. 어쩌다 동생들이 떠들기라도 하면 조용히 못 하느냐고 윽박질렀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괜스레 울적하고 답답해져 없던 일도 만들어 밖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광희는 군색한 다락방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던지 다행히 지원한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정작 학비가 없어서 장학금을 준다는 지방 대학을 택해서 내려가야만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광희가 군 복무를 마치고 서울에 다니러 왔을 때다. 종로 뒷골목 어느 허름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광희는 앉자마자 무슨 말인가 할 듯하면서 쉬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어깨를 실그러뜨린 채 연거푸 술잔을 비워댔다. 그러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지만 나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길을 떨쳐 내기라도 하듯 광희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누나!”
광희한테서 처음 듣는 호칭이었다. 확인 도장이라도 박아 놓겠다는 듯 자기 잔에 술을 채우며, 그 술을 단숨에 털어 넣으며, 내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도 누나, 누나, 누나라고 했다. 누나라는 말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나와 어울리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했다. 그 애 발음이 엉킨 것을 느낀 순간 알딸딸하게 올랐던 나의 취기도 사라졌다. 언제 그렇게 쟁여두었던가 싶은 내 안의 무엇이 힘없이 빠져나가, 잡다한 싸구려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무의미한 잡담과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 섞여 좁은 술집 뿌연 공기 속을 떠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그것을 내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식어버린 찌개를 뒤적거리며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또 하나의 내가 호기 있는 척하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가끔 전화 통화를 했다. 광희는 더는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릴 때 놀던 이야기 끝에 풀숲에 피어있던 달개비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고작 달개비야, 내가 아니고?”
농을 던졌을 뿐인데 광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전화 연결음은 살아 있는데 신경 하나가 뚝 끊긴 듯 서로 말을 못했다. 내가 먼저 우스갯소리로 말문을 열자 그답지 않게 허풍스레 웃어댔다. 그 후에도 우리는 집안 대소사에 참석한 적이 없었을까. 만난 기억은 없다. 어쩌다 통화를 해도 서로 말을 아껴 침묵이 길어졌고, 어릴 적 같이 놀던 이야기가 나와도 서로 열없게 웃다가 끊곤 했다.
어느 해였던가. 내게 전화를 한 광희는 다짜고짜 별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서울에 별이 안 보이는 이유가 뭔지 알아?”
“그야…. 서울의 공기가 탁하고…. 네온사인도 많고….”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더듬더듬 조각말을 주워댔다. 수화기 속에서 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광희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줄포탄을 발사했다. 서울의 별들이 자기 동네 숲으로 내려와 밤마다 놀고 간다나. 아침이면 미처 하늘로 오르지 못한 별들이 가슴에 파란 멍이 들어 달개비꽃으로 피어난다나. 서울의 달개비꽃도 눈물을 매달고 있을 테니 잘 들여다보라나. 낮게 쏴대는 연발이었지만 어찌 그리 내 안에 콕콕 박히던지 차마 웃지 못하고 어물쩍 너희 동네 달개비꽃에 서울 안부도 전해주라는 싱거운 말을 했던가 어쨌던가.
시간이 흘러 우리가 함께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춰내도 가물가물하고 시시할 만큼 다른 일에 관심 두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광희가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들 다 하는 것인데도 나는 그 애가 결혼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 만일 제치고 ‘이리’에 내려갔다. 광희는 찔레꽃 같은 신부 옆에 아람 큰 나무가 되어 서 있었다. 나를 보자 잘못하다 들킨 사람처럼 겸연쩍고 부끄러워했다. 그날의 광희는 어떤 배우보다 멋져 보였다.
광희는 결혼을 하고도 여름 휴가철이 되면 들뜬 목소리로 내게 전화하곤 했다. 서로가 약간씩 느물대고 빈정대면서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광희가 그렇게 변한 게 재미있고 안심이 되면서도 가슴 한편을 훑고 지나가는 냉기를 감지해야 했다.
단수수철이 지나자 물기가 다 빠져 버린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달개비꽃 유래를 그럴싸하게 지어내기도 했다. 나는 반죽이 좋지 못한 광희가 넉살스러운 척하는 이유를 잘 알면서도 무덤덤하게 말을 받아치곤 했다. 단수수를 먹으러 달개비꽃을 보러 금방이라도 내려갈 것처럼 약속해 놓고, 나는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몇 년이 더 지났을까. 매미 울음소리 자지러지고 칸나 꽃잎 붉게 타들어 가던 여름날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수박을 팔고 있는 트럭을 만났다. 수박 장수 아저씨한테 잘 익은 거로 골라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잘생긴 놈을 골라 통통 두드리는가 싶더니 이내 칼을 찔러 넣었다. 아니 살짝 댄 것 같았는데, 수박은 기다렸다는 듯이 쩍, 갈라졌다. 그것도 속살이 훤히 드러날 만큼. 초록 더미 속 선홍이 무척 생급스러웠다. 섬뜩하게도 느껴졌다. 그새 망을 챙겨 들고 그것 보라고, 기차게 잘 익지 않았느냐는 아저씨 말도 달갑지 않았다. 얼떨결에 수박을 받아들었지만, 집으로 오르는 언덕이 유난히 가파르게 느껴졌다.
현관을 막 들어서는데 방 안에서 전화가 울고 있었다. 놓치면 안 될 일이라도 있는 듯 신발을 벗어던지며 수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수박은 보기 좋게 쪼개져 버렸다.
광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갈이었다. 내 심장에서 덜컥 셔터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단수수가 여물어 간다는, 달개비꽃이 지천이라는 광희 목소리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 묻혀 버린 것이다.
아직도 여름밤이면 별들이 숲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광희가 말한 대로 미처 오르지 못한 별들이 달개비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달개비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달개비꽃은 남빛 끝동에 밤새 삭인 눈물을 매달고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얼마나 간절하면 그렇게나 푸를까. 한참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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