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026)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공짜는 없다 / 정성화 공짜는 없다 / 정성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한우를 파는 식육식당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한우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그 가게의 벽에 적혀있는 글귀였다."한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한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입니다."한우의 가치를 일깨워 주면서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글귀였다.그걸 보며 나는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렸다. 졸업 한 달 앞둔 우리에게 선생님은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여 말씀하셨다.“누가 이유 없이 비싼 밥을 사주거나 고가의 선물을 줄 때는 다 목적이 있는 거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단다."짧은 말이었지만 분명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실감했다. 아버지 기일에 학교 일직이 걸려서.. [좋은수필]개 이야기 / 강호형 개 이야기 / 강호형 일껏 반가워할 주인 얼굴을 떠올리며 어느 집을 방문해 대문을 두드렸다가, 개가 먼저 뛰어나와 영악스럽게 짖어 대기라도 하고 보면 기분을 잡치기 십상이다. 개의 처지로서야 그것이 주인에 대한 충성이요 본연의 임무이기도 할 터이니, 정체가 불분명한 방문객에게 무턱대고 꼬리를 흔들어 보이며 환영의 뜻을 표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의 사정이지 방문객으로서는 결코 기분 좋은 영접이 아니다. 그나마 개가 끈에 매어 있거나, 주인의 태도로 보아 침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적의敵意를 쉽게 거두어주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들개처럼 놓여 있는데다가 눈치마저 없어 거도鋸刀 날 같은 이를 드러내 보이며 날뛰기라도 하면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주인으로서야 유붕이자원.. [좋은수필]주전자 / 최장순 주전자 / 최장순 '酒전자', 붉은 글씨가 내 눈을 낚아챘다. 술 酒 삼수변만 보아도 컬컬한 목이 확 트일 것 같다. 주점이 연상되는 기발한 간판의 글씨에 벌써 불콰한 기운이 가슴 저 안쪽에서 올라오듯, 금방이라도 막걸리가 양은 대접으로 콸콸 쏟아질 것만 같다.한 잔 걸치고 싶은 최근 무렵, 저 간판이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군상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듯 간판 옆으로 집어등集魚燈처럼 매달린 주전자들은 하나같이 찌그러져 있다. 하기야 점잖은 얼굴로 나올 수 없는 곳이 주점이다. 화풀이라도 할 냥이면 냅다 무언가를 발로 차야 할 것, 그러니 주전자가 온전할 리가 없다. 저 양은 주전자가 매끈하다면 대폿집은 서민과 거리가 멀다. 만만한 발길들이 지나갔듯. 화풀이로 내던졌.. [좋은수필]봄동 / 정성화 봄동 / 정성화 유년 시절에 살았던 집은 재래시장 안에 있었다. 우리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세 들어 살던 아저씨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우리 집 바로 앞에서 그릇을 팔았다. 평소 말이 없던 아저씨가 그릇을 팔 때면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한쪽 발을 굴러가며 박수를 치거나 노랫가락을 흥얼거렸고 때로는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객쩍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장사를 하면 그렇게 신이 나는지 궁금했다.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두고 어른들은 '촌놈 생일'이라고 했다. 다들 자신의 생일을 맞은 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반가움에 서로 손을 맞잡고 그동안의 밀린 안부를 묻는 사람들 뒤에서는 국밥집의 가마솥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리가 묶인 채 날개를 퍼덕이던 장닭, 기름기가 반들반들하던 부침개, 요란하게 북을.. [좋은수필]줄 / 이방주 줄 / 이방주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설 때는 밧줄을 타야 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는 높이가 20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고맙게도 누군가 손아귀에 꽉 들어찰 만큼 굵은 밧줄을 늘여 놓았다. 이렇게 갈라진 바위틈을 이른바 '침니'라고 한다. 갈라진 틈이 너무 좁아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더구나 갈라진 바위틈에 발이 끼인 채 잘 빠지지 않아서 한 발 올려 디디기도 어렵다. 때로는 체중을 바위틈에 간신히 지탱하는 발끝에 싣고, 손아귀로 움켜쥔 밧줄을 있는 힘을 다하여 당기며 한 발씩 올라야 한다.아차하면 바로 낭떠러지다. 밧줄을 놓치고 미끄러져 떨어진 다음에 낭떠러지가 의미하는 것은 뻔하다. 그건 죽음이다. 여기에 밧줄이 없다면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그러니 자주색 밧줄은 생명줄이다.어깨가 빠지.. [좋은수필]망해사(望海寺)의 시름 / 이양선 망해사(望海寺)의 시름 / 이양선 지평선을 가르는 바람이 상쾌하다. 도로 양쪽에 핀 코스모스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김제평야는 황금빛 절정을 이루고 있다. 유년의 뜰로 거슬러가는 기분이다. 벼에서 단내가 난다. 알알이 익은 벼 이삭만큼 지난여름 흘렸을 농부들의 땀이 그려진다.머지않아 사라질 가을을 가슴에 담는 사이 심포沈浦가 눈에 들어온다. 군산과 부안 사이의 서해 바닷자락을 낀 자그마한 포구, 우리나라 백합의 팔 할이 생산되는 곳, 백합구이 생각에 입안엔 군침이 돈다.주차장에서 내리자 왁자해야 할 소리가 한가롭다. 손님을 서로 붙들려는 풍경이 썰렁하다. 포구를 따라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해산물 가게 앞에는 해삼이며 개불, 그리고 전복과 다양한 조개를 파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좋은수필]갈매기의 꿈 / 김문호 갈매기의 꿈 / 김문호 갈매기는 천지창조의 돌연변이 인지도 모른다. 가도 가도 바위섬 하나 없는 태평양 일부변경선 언저리의 갈매기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창세기 몇째 날, 새들에게 배정된 영역은 육지의 숲과 하늘이었지 바다와 창공은 아니었으리라.세상 어디에도 둥지라곤 없는 새, 해면에서 잠을 자고 바다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가는 새. 일망무제의 바다와 무한 창공을 자유 자재하는 갈매기의 유영은 말 그대로 완벽한 자유의 표상이다. 구름 속에 들었는가 하면 눈발처럼 휘날리고, 까마득한 창공에 깃발처럼 떴는가 싶으면 바람같이 해면을 내달린다. 그의 삶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생명을 위협할 맹조류나 침입자도 없거니와 생존을 경쟁할 다른 종족들도 없다. 수평선으로 테두리 쳐진 거대한 궁륭은 .. [좋은수필]당신의 의자 / 이정림 당신의 의자 / 이정림 우리 집에는 의자가 많다. 혼자 앉는 의자, 둘이 앉는 벤치, 셋이 앉는 소파…. 언제부터 우리 집에 그렇게 의자가 많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 소용이 있어서 사들였을 텐데, 정작 우리 집에는 한 개만 있으면 족하지 않던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려앉아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 비어 있는 의자들이 하품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모습이 안돼 보여, 심심한 촌로 뒷짐 지고 마을 가듯, 이 의자 저 의자에 가서 그냥 등 기대고 앉아 본다. 의자의 사명은 누구를 앉히는 것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는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비어 있는 의자에 앉힐 사람들을 돌려가며 초대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 이전 1 ··· 4 5 6 7 8 9 10 ··· 7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