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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서른한번째 장미 / 손광성 서른한번째 장미 / 손광성 남대문 꽃시장에 간 것은 네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세 시면 파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리 되고 말았다. 생각했던 대로 꽃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은 뒤였다. 살 형편도 못되면서 보석가게 앞에서 공연히 서성거리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
[좋은수필]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그날 오후에는 윈톤 켈리의 피아노가 흘렀다. 웨이트리스가 하얀 커피잔을 내 앞에 놓았다. 그 두툼하고 묵직한 잔이 테이블 위에 놓일 때 카탕하고 듣기좋은 소리가 났다. 마치 수영장 밑 바닥으로 떨어진 작으마한 돌맹이 처럼 그 ..
[좋은수필]뫼비우스의 띠 / 홍억선 뫼비우스의 띠 / 홍억선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사람은 얼굴이 새까맣게 돼 내려왔고, 또 한 사람은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의 사람이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얼굴이 더러운 사람이 씻을 것입니다." "아니다. 그렇지가 않다." "왜 ..
[좋은수필]돌할매 / 안재진 돌할매 / 안재진 집안에 큰일이 있어 모처럼 남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저녁 무언가 많은 얘기가 오가더니 새벽녘에는 어디론가 길을 나서고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멋쩍게 얼버무리며 웃기만 했다. 나중 알게 된 일이지만 돌할매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좋은수필]어머니의 경배 / 정목일 어머니의 경배 / 정목일 어머니는 일생을 경배하며 보내셨다. 식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장독대 한 켠에 정화수를 떠다 놓으시고 꿇어앉아 기도를 드렸다. 먼 길을 걸어 향나무가 있는 샘터에 가 향긋한 물을 떠와 정화수로 삼으시기도 했다. 새벽이면 어머니방에서 낭랑..
[좋은수필]달팽이 / 손광성 달팽이 / 손광성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개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
[스크랩] [수필]겨울, 그리고 수필 겨울, 그리고 수필 / 신현식 어렸을 적, 겨울의 새벽녘이면 동생과 나는 깔고 자던 요 밑으로 기어들곤 했다. 어머니가 잔기침을 하시며 갈아 넣은 연탄불이 그 때쯤 온기를 내뿜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으면 멀리에서 교회의 파이프 올겐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련한 소리는 ..
[좋은수필]감자꽃은 피었는데 / 홍억선 감자꽃은 피었는데 / 홍억선 열서너 살쯤 되었을까. 소년은 앉은뱅이책상을 등에 메고, 책보따리를 양손에 든 채 소백산 자락의 외딴 간이역에 서 있었다. 맞은편 산비탈에서는 감자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완행열차는 긴 몸체를 느릿느릿 뒤척이며 예천, 상주를 지나 김천을 거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