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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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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낙화 / 이형기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
[명시]가는 길 / 김소월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명시]겨울 나그네 / 항금찬 겨울 나그네 / 항금찬 기름 난로의 열기는 체온보다 따습다. 마주앙 한 잔 따라 놓고 나는 어느 계절의 나그넨가. 휘서 디스카우가 슈베르트를 노래한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려고 이곳을 찾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 잔이 비면 다시 마주앉는 고독 밤9시 45분 거리도 잠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온실을 ..
[명시]안개의 나라 / 김광규 안개의 나라 / 김광규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
[명시]사슴 / 노천명 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젊잖은 편 말이 없구나 간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명시]깃발 / 유치환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혜원을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무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명시]귀천(歸天) / 천상병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가슴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명시]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들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