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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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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西風賦서풍부 / 김춘수 西風賦서풍부 / 김춘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 놓고 복사꽃을 올려놓고..
[명시]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 조병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 조병화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사람들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
[명시]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 엘렌 코트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 엘렌 코트 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은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라. 돌들에게도 말을 걸..
[명시]과일가게에서 / 최영미 과일가게에서 / 최영미 사과는 복숭아를 모르고 복숭아는 포도를 모르고 포도는 시어 토라진 밀감을 모르고 이렇게 너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느 가을날 오후,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댄 채 밀고 당기며 붉으락푸르락 한 세상 아름다워지려는구나
[명시]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
[명시]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명시]낙화 / 조지훈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의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선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
[명시]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는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렛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드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