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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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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그는 / 정호승 그는 /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
[명시]사는 이유 / 최영미 사는 이유 / 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사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
[명시]천장호에서 / 나희덕 천장호에서 / 나희덕 얼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맹이들, 세대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명시]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지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
[명시]봄날 / 공영구 봄날 / 공영구 하늘의 눈망울 너무 맑아 괜히 가슴 셀레는 봄날. 혼자라도 좋아 마냥 걷고 싶어 철쭉꽃 활짝 핀 계곡 발 담그고 까칠한 얼굴 비춰보니 흐르는 맑은 물 작은 욕심 알갱이들 내 얼굴 간질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갯버들 피리 소리 망울지는 꽃그늘 아래 나를 깜빡 잠들게 한다.
[명시]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 이 정하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 이 정하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히 고이는 샘물 같은 것... 진실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노라고 말하지 말고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흘릴 일이다. 기어이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붙잡지 말라. 사랑..
[명시]나의 시 / 서정주 나의 시 / 서정주 어느 해 봄날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성(城)안 동백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아계시고, 나는 풀밭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써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
[명시]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려 줍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아닙니다. 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 잘못이 아닙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여 가장 나중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