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 시 (168) 썸네일형 리스트형 [명시]서리꽃 / 유안진 서리꽃 / 유안진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 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작은 이 가슴마저 시려 드는 밤이면 임자 없는 한 줄의 시(詩)를 찾아 나서노니 사람아 사람아 둥만 보이는 사람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이 마음을 어쩔래 육모 서리꽃 내 이름을 어쩔래. [명시]어혈 / 공영구 어혈 / 공영구 툭 툭 툭 자잘한 꽃망울 터지는 소리 숲실마을 계곡이 자욱하다 요염한 자태로 여기저기 다리 벌린 가지들 그것도 모자라 은은한 향기 머금은 꽃송이 꽃술은 촉촉한 혓바닥 살짝 내민다 향기에 취한 벌 한 마리 혼 빠진 듯 가랑이 사이를 헤매더니 꽃술에 대가리 콱 박고 발광한다 실핏.. [명시]지실댁 / 곽재구 지실댁 / 곽재구 매화꽃이 피었네 뼈 끝에 송송 돋은 눈물방울들 어이야 세월만 훌쩍 지났네 헤어질 때 그 사람 내 어깨 두 번 두드려 주었네 두엄자리 곁에 나란히 서서 사랑 같은 신식말들을 알지 못했네 허리춤엔 사나흘 보리개떡 40년 세월만 구름처럼 북녘산 넘었네 그 사람 이름은 다 잊었네 처음.. [명시]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 안도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 안도현 속을 보여주지 않고 달아오르는 석탄난로 바깥에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철길 위의 기관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철없이 철없이도 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 울어야 네 슬픔으로 꼬인 내장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 [명시]그대의 들 / 강은교 그대의 들 / 강은교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시작되는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하네 하찮은 것들의 피비린내여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이여 평화여 밥알을 흘리곤 밥알을 하나씩 줍듯이 먼지를 흘리곤 먼지를 하나씩 줍듯이 핏방울 하나 하나 그대의 들에선 조심히 주워야 하네 파.. [명시]아파트 묘지 / 장정일 아파트 묘지 / 장정일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난 것도 사무실로 돌아갈 일도 잊은 채 희고 아름다운 그녀 다리만 쫓아갔네 도시의 생지옥같은 번화가를 헤치고 붉고 푸른 봄이 날름거리는 횡단보도와 하늘을 오를 듯한 육교를 건너 나 대낮에 여우에 홀린 듯이 따라갔네 어.. [명시]목련 / 안도현 목련 / 안도현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절반쯤만, 우리 가진 것 절반쯤만 열어놓고 우리는 여기 머무를 일이다 흐득흐득 세월은 가는 것이니 [명시]봄밤 / 이성복 봄밤 / 이성복 바깥의 밤은 하염없는 등불 하나 애인으로 삼아서 우리는 밤 깊어가도록 사랑한다 우리 몸 속에 하염없는 등불 하나씩 빛나서 무르팍으로 거기 가기 위해 무르팍 사이로 너는 온 힘을 모은다 등불을 떠받치는 무쇠 지주에 차가운 이슬이 맻힐 때 나는 너의 머리를 쓰다듬어 저승으로 넘..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