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 시 (168) 썸네일형 리스트형 [명시]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 - 19가 나던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 [명시]젖은 편지를 읽다 / 노태맹 젖은 편지를 읽다 / 노태맹 자귀나무 붉은 그늘 아래 늙은 소 묶어놓고 연못가 내 둥글게 구부리고 잠들었네 거친 세월이 가고 커다란 바위 같은 천둥 내 잠 속으로 떨어져 갈라지고 자귀나무 검은 그늘 아래 문득 잠깨었을 때 연못은 여린 짐승처럼 온 몸을 뒤틀며 붉은 자귀꽃 뱉어내고 있었네 늙은 .. [명시]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벚나무는 건달같이 / 안도현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명시]낮술 / 정현종 낮술 / 정현종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차 덜거덕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우리는 그대의 빈 그릇을 무엇으로든지 채워야 하느니, 우리가 죽음으로 그대를 배부르게 할 때까지 죽음이 혹은 그대를 더 배고프게 할 때까지 [명시]의자 / 조병화 의자 / 조병화 지금 어디에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 [명시]소 / 김종삼 소 / 김종삼 네 커다란 검은 눈에는 슬픈 하늘이 비치고 그 하늘 속에 내가 있다. 어리석음이 어찌하여 어진 것이 되느냐? 때로 지긋이 눈을 감는 버릇을 너와 더불어 오래 익히었고나. [명시]그리움/구석본 그리움 / 구석본 나의 애인은 언제나 만리 밖에 서있다. 내가 눈부신 목소리로 '사랑한다' 하면 사랑 밖에 서있고 '그립다' 하면 그리움 밖에 서서 불빛처럼 깜빡이며 나의 가슴을 깨우고 있다. 나의 그리움이 만리까지 쫓아가면 또, 만리 밖에 서는 나의 애인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승에서 풀리지.. [명시]나의 하느님 / 김춘수 나의 하느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설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純黑이다. 三月에 젊은 ..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