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1 (100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해뜨는 집의 크리스틴 / 구활 해뜨는 집의 크리스틴 / 구활 그날 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시각은 세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그리 좁지도 않은 골목길은 밤이 너무 깊은 탓인지 호객행위도 끊겨 있었다. 다만 대문 위에 켜져 있는 홍등(紅燈)만이 지겹다는 듯이 희미하게 졸고 있었다. 타지에서 온 소설가 Y의 제안에, 신.. [좋은수필]어머니와 호미 / 김영미 어머니와 호미 / 김영미 장터 초입에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숫돌에 불꽃을 튕기며 무딘 칼끝을 연마하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마찰음이 봄 햇살에 부서져 꽃잎처럼 흩어진다. 어린 모종들이 눈을 비비는 식물원 앞에 세모의 날을 세우고 등이 굽어 있는 호미가 발걸음을 붙.. [좋은수필]칼 가는 사내 / 윤정혁 칼 가는 사내 / 윤정혁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안방에서 칼을 갈고 있었다. 동향인 작은 아파트의 그다지 넓지 않은 방은 불을 켠 거실에서 보아 약간 어두워 보인다. 여러 장 겹쳐 깐 신문지 위에 놓인 닳은 숫돌과 물그릇,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칼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칼 갈던 손을 멈.. [좋은수필]허기 / 박은주 허기 / 박은주 바바리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바리가 참 잘 어울렸다. 내가 살던 바닷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련된 외모에 키도 훤칠했다. 핏기없는 얼굴과 바람에 팔락이던 바바리 끝자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늦은 점심으로 허.. [좋은수필]사데풀 아줌마 / 박영자 사데풀 아줌마 / 박영자 그녀를 알게 된 건 작년 겨울, 아젤리아가 베란다에서 분홍빛 첫 꽃잎을 열던 날이었다. 한겨울을 건너며 꽃을 피운 그 인내가 가상하여 상이라도 주려고 영양제 몇 알을 뿌려 주다 보니 한편에 낯선 풀 한 포기가 눈에 띈다. 동글동글 야들야들한 잎을 몇 장 펼친 .. [좋은수필]침향(沈香) / 정목일 침향(沈香) / 정목일 ‘침향(沈香)’ 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어느 날의 차회(茶會)였다. 뜻이 통하는 몇몇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우리나라의 전통차인 녹차(綠茶)를 들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다. 차인(茶人) ㅅ선생이 주재하시는 차회(茶會)에 가보니 실내엔 전.. [좋은수필]늙은 감나무 / 박혜숙 늙은 감나무 / 박혜숙 초겨울 하늘이 비어 있구나. 그 빈 공간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너는 어쩌면 한 톨 미련도 없이 잎을 다 털어 버렸니. 노인의 손가락처럼 살집 없는 가지에 걸쳐 놓았구나,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올려놓았었던 그 자리에, 꺼칠한 나무껍데기 속엔 내년 봄에 다시.. [좋은수필]햇살 줍는 비둘기 / 김윤희 햇살 줍는 비둘기 / 김윤희 4월의 상당공원을 가로질러 갑니다. 꼼지락꼼지락 애순을 피워내며 한창 파르름히 물이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보도블록에서 경망스럽게 또각거리던 구두굽 소리가 공원에서는 부드러운 흙바닥 속으로 잦아들어 이내 민망함을 면합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 이전 1 2 3 4 5 6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