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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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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파란 그림 / 추선희 파란 그림 / 추선희 계절은 제 알아서 온다. 하지만 내가 부러 계절을 당기기도 한다. 언제나 그것은 제 계절 보다 반 발자국 정도 앞선다.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지만 겨울의 끝자락 쯤 봄의 입김이 앞산 너머에서 간간히 훅, 하고 밀려들 때, 누군가의 전화로 마음이 달큰해질 때, 나..
[좋은수필]햇살 줍는 비둘기 / 김윤희 햇살 줍는 비둘기 / 김윤희 4월의 상당공원을 가로질러 갑니다. 꼼지락꼼지락 애순을 피워내며 한창 파르름히 물이 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보도블록에서 경망스럽게 또각거리던 구두굽 소리가 공원에서는 부드러운 흙바닥 속으로 잦아들어 이내 민망함을 면합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
[좋은수필]빛 가운데의 어둠 / 김남조 빛 가운데의 어둠 / 김남조 ‘빛 가운데의 어둠’ 이 말의 출처를 명백히 기억은 못하나마 누구던가 외국의 선현(先賢)이 지은 책 속의 한 구절인 성싶다. 비록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어두워도 이 어둠이 ‘빛 가운데’라는 전제에 놓여 있는 한엔 구원의 여지가 있다 할 것이다. 빛 속의 ..
[좋은수필]배꽃 / 정여송 배꽃 / 정여송 약속 날짜가 다가온다. 정해진 주제에 대한 글 한 자 써 놓은 것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난다. 무엇을 어떻게 쓸까만 생각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황사바람이 몰려온 것처럼 눈앞이 뿌옇고 가슴은 답답해진다. 안방에서 아이들 방으로 다시 거실로, 책상에 앉았다가 침..
[좋은수필]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 구활 조팝나무 흰 꽃으로 내리는 봄 / 구활 “아범아, 우리집 화단에도 박산꽃나무 한 그루를 심었으면 좋겠구나. 고향 밭둑에도 더러 서 있고 야산 발치에 흔하게 있는 흰 꽃이 눈송이같이 피는 나무 말이다. 내사 이름을 몰라 박산꽃나무라고 부르고 있다마는. 왜 조선네 짐 앞마당에 봄이 무..
[좋은수필]곰배 / 정서윤 곰배 / 정서윤 아무리 예쁘게 보려고 해도 볼품이 없다. 뭉텅한 나무토막에 긴 자루 하나를 쿡 박아 놓은 저 물건! 슬쩍 봐도 못생겼고 자세히 보면 더욱 못난이다. 사람이든 연장이든 인물 보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못난 건 못난 것이다. 나의 어릴 적 별명은 곰배였다. 별명이 곰배인데..
[좋은수필]오 헨리에게 / 남영숙 오 헨리에게 / 남영숙 몇 해 전, 탁해진 그의 피는 온몸을 샅샅이 훑으며 수월하게 흘러야 함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그것이 그를 잠시 혼절하게 하였다. 퇴원 후 건강 지키기와 소득, 동행하지 못할 그 두 갈래에 대한 선택은 칡과 등나무로 한참을 얼크러져 있다가 명예퇴직이라는 생의 불..
[좋은수필]가면의 여인들 / 최태준 가면의 여인들 / 최태준 약수터를 오르내리는 길에 얼굴을 가린 여인들과 이따금 마주친다. 천으로 만든 가면을 썼는데, 그들이 곁을 스쳐 지날 때면 나는 숨을 죽이고 길섶으로 물러선다. 익명성의 그 섬뜩함 탓이리라. 얼굴을 보지 못하니 그 표정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가면의 여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