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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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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산이 걸어와서 / 반숙자 산이 걸어와서 / 반숙자 산이 좋아서 산자락에 비둘기집 같은 둥지를 틀고 땅을 일구며 사는 내게 어느 날 산이 뚜벅뚜벅 걸어와서 ‘당신은 신선이외다.’ 일러주고 갔네. 초록빛 실바람을 타고 봄이 살포시 영너머에 내려앉으면 가슴을 마구 설레게 하는 쪽빛 동경이 너울거리고 파아란..
[좋은수필]빈방 / 김은주 빈방 / 김은주 홍매화가 붉게 핀 길 건너 할머니집이 전에 없이 부산하다. 마당 가득 사람이 북적대고 환하게 불도 밝혀져 있다. 집 앞 텃밭에 흙이 녹아 씨를 넣어야 할 때가 다 되었는 데도 할머니는 기척이 없었다. 추운 겨울을 건너기 위해 아들네 집에라도 가셨나 싶었는데 오늘 밤 할..
[좋은수필]봄 / 장호병 봄 / 장호병 봄은 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강물은 서로 몸을 섞으며 나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 지상에선 아직 대궁이를 눕히지 않은 갈대 숲 속의 새들이 낯선 내방자를 경계하는지 분주하다. 뿐만 아니다. 땅 속에서도 생명을 기어 나르는 소리가 들인다. 그 활발한 움직임으로 땅은 잔뜩..
[좋은수필]곰장어는 죽지 않았다 / 정성화 곰장어는 죽지 않았다 / 정성화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들어와 전등 스위치를 위로 탁 젖힐 때, 그 순간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가족들이 각자 자신의 일로 집을 떠나간 뒤, 나는 그야말로 대소쿠리 안을 구르는 땅콩 한 알..
[좋은수필]봄이 오는 소리 / 허경자 봄이 오는 소리 / 허경자 아들아이로부터 메일이 왔다. 참 뜻밖의 일이다.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해야 답을 주는 아이였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겉으론 뚝뚝한 아이였다. 아들은 커 가면서 아버지와 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나면 왠지 힘이 난다고 했다. 하..
[좋은수필]맹물을 위한 변(辯) / 박양근 맹물을 위한 변(辯) / 박양근 시답잖은 일을 당하면 맹물을 마시고 싶다. 그것에는 흐린 마음을 곧세우는 서릿발 기운이 없고, 상대방이 움찔거릴 열기를 내쏘는 물성도 없다. 맹물을 아무리 마셔도 한번 아려진 심사는 여전히 고달프다. 그런데도 속이 쓰리거나 배가 허하면 맹물 한 그릇..
[좋은수필]만년 과도기(萬年過渡期) / 윤재천 만년 과도기(萬年過渡期) / 윤재천 중국의 황하(黃河)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했다. 강물이 맑고 푸른 날이 없다는 뜻이다. 강물이 맑고 푸름은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후와 풍토가 그 강물을 푸르고 맑게 두질 않으니 아무리 맑은 강을 기다리며 백년을 보내도 푸를..
[좋은수필]분심(分心) / 정여송 분심(分心) / 정여송 더러 재력 있는 사람이 운명하면 시끄러운 집안이 있다. 재산 이권 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시신 앞에서 빼앗고, 빼앗기고, 자르고, 나누는 활극이 벌어진다. 용광로의 불같은 소유욕이 아귀다툼으로 변한다. 그때는 이미 형제가 아니다. 적이 되어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