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 (5908)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죽방렴 / 정성화 죽방렴 / 정성화 영화 '오아시스'가 마침내 베니스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다. 기쁜 일이고 당연한 결실이다. 내가 그 영화에 대해 진작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자 주연배우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벗은 종두의 가슴이 앙상하다'라는 시나리오의 지문 한 줄 때문에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전 무려 18kg이나 체중을 줄였다고 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선악이 공존하는 광기 어린 눈빛을 보이며, 다가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했던 배우다. 자신이 맡은 역에 완전히 몰입하여 우리 삶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그에게서 나는 진정한 프로정신을 느낀다.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감탄스럽다. 천 켤레도 넘는 연습용 토슈즈(toe-shoes)를 신었다는 발레리나 강.. [좋은수필]땡볕 / 박정순 땡볕 / 박정순 휴일 한나절 내내 집안 청소를 마친 뒤 어머니를 따라나선다. 함께 가서 일손 보태달라는 눈치 때문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지난봄부터 특별한 일 없으면 쉬는 날 오우 일정으로 잡히게 됐다.목적지는 집 근처의 제법 너른 공터,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 귀퉁이에 다음 단계 공사를 위해 남겨둔 자투리 부이이지, 아무나 사용하라고 버려진 게 아니라는 경작금지 안내판이 서있음에도 극성스런 손길들이 밭두렁 나누어 부쳐놓은 작물이 자라고 있다.가진 문서로 권리 주장할 수 없는 땅이니 먼저 씨앗 묻거나 모종 꽂아놓은 사람의 경작권을 인정해 주는 게 이곳 나름의 관례인데 내놓고 밝히기 뭐 하지만 그 쪼가리 밭 임자 중에 우리 시어머님도 들어 있는 것이다.햇살 미지근해지는 이른 봄부터 시작해, 비늘구름 뒤에서 .. [좋은수필]사이 ㅅ / 박순태 사이 ㅅ / 박순태 바람이 속절없이 불어대는 날이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잎사귀들에 눈길이 간다. 잎이 춤을 출 땐 나뭇가지는 배경음악이 되어주고 곡예를 할 땐 신경 줄을 놓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는 잎은 무희이거나 곡예사가 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나뭇가지와 잎은 돌풍과 태풍이 휘몰아쳐도 온전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 장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려니, 낱말도 나뭇가지 잎처럼 둘이 만나 일심동체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내와 그 주변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냇가', 초와 불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생긴 '촛불' 제사와 날이 후손을 매개체로 하여 생성된 '제삿날', 그리고 나무와 잎이 인연을 맺은 '나뭇잎…….이 중 '나뭇잎'이란 합성어가 .. [좋은수필]기차칸을 세며 / 반숙자 기차칸을 세며 / 반숙자 노부부가 가만가만 풀을 뽑는다. 호미를 쥔 손등에 동맥이 내비쳐 쏟아지는 햇살에 푸르게 빛난다. 올봄 내 몸살감기를 달고 사는 남편은 기운이 달리는지 호미를 내려놓고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들녘에 눈길을 꽂는다.그 들녘을 가르고 기차가 지나간다. 음성역에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니 화물차인 모양이다. 꼬리가 길다. 디젤기관차로 바뀌기 전에는 기차 소리가 칙칙폭폭으로 들렸었다. 언젠가부터 기차소리는 덜커덕덜커덕하다가 요즘은 뿌우웅 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차가 지나가는 기차역을 바라보며 일하는 이 언덕에서는 어려서와 마찬가지로 기치는 장난감이다.무료해지면 노부부는 기차 칸을 센다. 하나, 둘 열하나……. 번번이 숫자를 놓친다. 아니 숫자가 아니라 기차 화물칸이다. .. [좋은수필]빗방울 전주곡 / 구활 빗방울 전주곡 / 구활 비가 오는 날이면 쇼팽의 전주곡 15번 '빗방울'을 듣는다. 날씨가 흐린 날에도 '어서 비가 오라'고 그 음악을 듣는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에서부터 비가 내린다. 참 좋다. 비가 오면 조금은 쓸쓸하지만 비가 전해 주는 슬픔이 때로는 따뜻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좋다.쇼팽의 '빗방울'을 듣고 있으면 슬픈 일도 없는데 피아노 건반 위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괜히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럴 때면 빗물이 타고 내리는 유리창 앞에 선다. 눈도 흐려지고 마음도 흐려져 슬픔은 더욱 커진다. 이별의 아픔을 앓는 사람처럼 외롭고 처량하다. 슬플 때는 유리창처럼 울어야 한다.'빗방울'을 들을 때미다 두 이미지가 겹친다. 하나는 쇼팽이며 나머지 하나는 나 자신이다. 스물여덟의 쇼팽은.. [좋은수필]빗방울 전주곡 / 구활 빗방울 전주곡 / 구활 비가 오는 날이면 쇼팽의 전주곡 15번 '빗방울'을 듣는다. 날씨가 흐린 날에도 '어서 비가 오라'고 그 음악을 듣는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에서부터 비가 내린다. 참 좋다. 비가 오면 조금은 쓸쓸하지만 비가 전해 주는 슬픔이 때로는 따뜻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좋다.쇼팽의 '빗방울'을 듣고 있으면 슬픈 일도 없는데 피아노 건반 위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괜히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럴 때면 빗물이 타고 내리는 유리창 앞에 선다. 눈도 흐려지고 마음도 흐려져 슬픔은 더욱 커진다. 이별의 아픔을 앓는 사람처럼 외롭고 처량하다. 슬플 때는 유리창처럼 울어야 한다.'빗방울'을 들을 때미다 두 이미지가 겹친다. 하나는 쇼팽이며 나머지 하나는 나 자신이다. 스물여덟의 쇼팽은.. [좋은수필]‘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 정성화 ‘꺾이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 정성화 2002년 한일 원드컵은 4강 신화와 함께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남겼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슬로건이다. 비록 스포츠 슬로건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일곱 글자가 가긴 힘은 컸다. 삶이란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나는 그 일곱 글자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 마음 속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했다.재작년 월드컵 대회에서 16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태극전사 두 사람이 펼쳐 든 태극기에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꺾이지 않는’이란 말속에는 무언인가 우리를 꺾으려 한다는 현실이 들어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던 시절이었기에 이 슬로건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3.. [좋은수필]낙양의 동쪽, 강 흐르다 / 박시윤 낙양의 동쪽, 강 흐르다 / 박시윤 산야를 훑고 지나온 물이 몸집을 불린다. 완만한 초입을 지나, 굽이굽이 치며 넘어온 길이 어찌 평안하였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지맥을 따라 흐르던 기운이 모여, 어느 골짜기에서 샘을 이루었을 게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미미하게 발원하여, 겨레의 마음을 담고 예까지 흘러왔을 게다.그간 바닥에 뉘인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 흔적 다 감추이고, 이리도 맑게 세상을 담그고 있단 말인가. 사내의 가슴에 한 번쯤은 애간장 녹이며 안기었을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기도 하고, 때로는 땅의 기운을 쫓아 강하게 달음질치는 대장부의 무서운 기세였겠지.물빛은 지금, 조용히 나를 투영하고 있다. 떠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를 담그고 있다. 나는.. 이전 1 2 3 4 5 6 7 8 ··· 739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