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 (5819)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화두 / 맹난자 화두 / 맹난자 경봉선사께 받은 화두話頭는 '시삼사是甚麼'였다.50년 전, 통도사 극락암에서 "예까지 몸뚱이를 끌고 온 이 마음은 무엇인고?"를 물으시며 "이 무엇고?"의 화두를 내려주셨다.근본 취지도 모르면서 어느 날 애꿎게 1700개 공안公案중에서 화두 하나를 골라 들었다. 『벽암록』 제45칙의 '만법귀일'의 공안이다.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하는데 그 하나로 어디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나는 청주에 있을 때, 한 벌의 베옷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조주스님과의 문답에서 나는 세 가지가 궁금했다.첫째, 만법은 왜 하나로 돌아가는가?둘째, 돌아가는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셋째, 조주는 왜 뚱딴지같이 베옷 한 벌의 무게가 일곱 근이라고 했을까?머.. [좋은수필]골목 / 최민자 골목 / 최민자 골목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휘황한 네온사인도, 대형마트도, 요란한 차량의 행렬도 없다. '열려라 참깨!'를 외치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나, 제복 입은 경비원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 내리는 고층빌딩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길목 어름에 구멍가게 하나, 모퉁이 뒤에 허름한 맛집 하나 은밀하게 숨겨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를 일상의 맥박삼아 두근거리는, 웅숭깊고 되바라지지 않은 샛길이어서 좋다.골목은 자주 부끄럼을 탄다. 큰 줄기에서 뻗어 나와 섬세한 그물을 드리우는 잎맥과 같이, 골목도 보통 한길에서 곁가지를 치고 얼기설기 갈라져 들어간다. 하여 골목의 어귀는 대충 크고 작은 세 갈래 길을 이루기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골목들은 입구 쪽을 어수룩이 숨겨두기를 좋아.. [좋은수필]매화는 얼어야 핀다 / 손광성 매화는 얼어야 핀다 / 손광성 오랜 세월 두고 매화만큼 사랑을 받아 온 꽃도 달리 더 없을 듯싶다. 시인치고 매화를 읊지 않은이 없고, 화가치고 매화 몇 점 남기지 않는 이 드물다.사랑을 받으면 부르는 이름 또한 그만큼 많아지는 것일까. 매화는 달리 부르는 이름이 없다. 청우淸友니 청객淸客이라 하기도 하고, 일지춘一枝春, 또는 은일사隱逸士라고도 한다. 모두가 그 맑고 깨끗한 품성을 기려 이르는 말이다. 게다가 엄동설한에도 훼절함이 없는 고아한 청결. 해서 매화는 소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넣기도 한다.진나라 때이다. 한때 문학이 성하자 매화가 늘 만개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학이 쇠퇴하자 매화도 따라서 피기를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꽃나무라 하여 호문목好文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좋은수필]백년의 사랑 / 김종회 백년의 사랑 / 김종회 “사람이 어떻게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곧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지금으로부터 14년 전, 2000년 9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필자의 스승 황순원 선생께서 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죽음의 순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반영한다. 다가올 죽음을 걱정하기보다는 남아 있는 삶의 나날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이 된다는 뜻이다. 생전의 언표를 실천하듯 〈탈〉, 이후 황순원의 후기 단편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치열하게 탐색한다.말년의 선생께서는 이 땅에서 수(壽)를 다하고 세상을 하직할 때, 가족이나 주위에 폐 끼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평생을 해로한 부인 양정길(楊正吉) 여사와 함께 서울 사당동에서 살.. [좋은수필]따뱅이 / 장금식 따뱅이 / 장금식 중간은 둥글게 비어 있고 가장자리를 향해 짚으로 촘촘히 엮여있다. 숭숭 구멍이 난 곳이 없어 흐트러짐을 볼 수 없다. 각진 모서리도 없다. 짚으로 만들어져 차갑지 않고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인내심 많고 흔들림이 없는 강인한 우리의 옛 어머니들을 닮았다.그 옛날 힘든 시절, 따뱅에는 밭에서 무·당근·고구마·감자 같은 것으로 식솔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이고 날랐던 운반 수단이었다. 빨래와 일꾼들의 새참까지 이것이 없었다면 여인네들의 고된 삶을 더욱 힘들게 하였을 터, 어떻게 보면 여자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물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짚으로 둥글게 빙빙 틀어 놓은 따뱅이 안에는 한 올 한 올 우리의 옛 어머니들의 사연이 얼마나 많이 얽혀 있을까? 씨줄.. [수필]늙은 소년 / 신현식 늙은 소년 / 신현식 - - 중에서 소설 『늙은 소년 액슬브롯』을 다시 읽었다. 도서관에 오시는 학인學人들께 소개하기 위해서였다.지난해, 문학 큐레이터를 하게 되었다. 여러 프로그램 중, 몇 차례 독후감 수업을 하기로 했다. 어떤 작품으로 할까 궁리하다 그 책이 떠올랐다.『늙은 소년 액슬브롯』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의 단편소설인데, 학창 시절에 처음 읽었다. 늙은 농부가, 젊었을 적 꿈꾸었던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내용이다. 그의 도전정신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수강하시는 분들이 액슬브롯처럼 글쓰기에 도전해 보라는 뜻으로 선택했다. 자신의 삶을 정리, 기록하는 것은 의미와 보람을 안겨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액슬브롯은 평범한 시골 농부였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아내를 먼저 .. [좋은수필]잡초론 / 여세주 잡초론 / 여세주 시골 마을에 아담한 집 한 채를 새로 지었다. 깊은 산골은 아니지만 작은 냇물이 흐르는 골짜기 마을이다. 그래서 '대곡리'라 부른다. 옛날 이름은 '한골'이었단다. 처음 와 본 곳이지만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이리라. 마을 풍경도 그러려니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집터였다. 서쪽으로 나지막한 산을 끼고 있는 곳인데, 그 산에는 바위가 가파른 산기슭을 떠받치고 있고, 상수리나무와 대나무가 빽빽이 하늘까지 솟아 있었다. 마당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어서 금세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새집은 이듬해 봄이 시작될 즈음에 완공되었다. 담도 없는 마당은 황량했다. 측백나무와 사철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공간의 공허함을 덜어주.. [좋은수필]산사에서의 하룻밤 / 유시연 산사에서의 하룻밤 / 유시연 때때로 길은 나를 생의 이쪽과 저쪽, 혹은 지상과 땅 그 경계 어디쯤에 풀어놓는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맞은 것은 적막과 우편물과 쉰내 나는 누룽지였다.베란다에 둔 식물은 말라가고 겨우 살아남은 이파리 몇 개가 맥없이 늘어져 있다. 가방을 던져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러고는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월악산 계곡, 미륵불의 푸근한 미소에 끌려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다가 온 일, 까칠한 밤송이가 가득 흔들리는 장면, 천 년의 시간을 건너와 나와 마주한 인연의 구체성에 대해 묵상한다.시간의 지층 저 너머를 통과한 듯 묵은 돌에서는 영원의 흔적이 느껴졌다. 전생이었든지 아니면 언젠가 와본 듯한 장소였다. 아주 오래전 지금은 헤어진 그와 함께 왔던 기억이 난다. 푸지게 열.. 이전 1 2 3 4 5 ··· 7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