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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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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바람 / 박헬레나 바람 / 박 헬레나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팔랑거린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와서 어디쯤서 사라지는가. 인생의 여름에서 한참 멀어진 지금, 아직도 잠재우지 못한 내 안의 바람이 마중을 나와 함께 일렁인다. 아이들 집에 머물 때 아침마다 산책로를 찾는 것은 꼭 운동을 위함이기보다..
[좋은수필]아다지오 / 최계순 아다지오 / 최계순 ‘오십’이라는 나이의 강물이 내게로 왔을 때 나는 이 시간들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지나가서 자근자근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쉰’이 아주 더디게 지나가는 그래서 내게 아주 느리고 느린 아다지오이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젖망울이..
[좋은수필]청수장(淸水壯) 여관 / 강여울 청수장(淸水壯) 여관 / 강여울 오늘도 나는 내 창 맞은편에 있는 청수장(淸水壯)여관을 건너다본다. 옥상에는 빨랫줄 가득 흰 수건들이 눈부시게 펄럭이고 있다. 그 펄럭임 속으로 냇가에서 방망이질로 빨래를 하던 어머니의 영상이 일렁인다. 청수장여관은 도심 중간에 자리한 어수룩한 ..
[명시]꼭지/문인수 꼭지 / 문인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러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
[좋은수필]때깔곰보 / 신시몽 때깔곰보 / 신시몽 일찍부터 서모슬하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내 소년기엔 시린 풍경으로 굳어버린 세월들이 유난히 많다. 그 중 정자라는 계집애는 켜켜이 먼지 쌓인 기억의 곳간에 바래지 않는 한 폭 당채화로 남아있다. 1950년대 후반기의 다산(多産)과 굶주림은 빈곤층의 숙명 같은 전유..
[좋은수필]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 / 구활 연꽃 필 때 들리는 소리 / 구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위에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이 말은 참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문답이나 화두 같기도 한 ‘보임’과 ‘안보임’의 문제는 오랜 수행을 거치지 않으면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고 ..
[좋은수필]어머니의 칼국수 / 강해경 어머니의 칼국수 / 강해경 한국 전쟁을 겪은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물자도 부족하고 식량도 부족했던 그 시절, 입이 짧고 허약했던 나는 어른들의 속을 꽤나 썩여 드렸던 것 같다. 걸핏하면 앓아 누워 잔병치레를 했는가 하면 편식도 심했다. 잡곡밥도 싫어하고, 국도 안 먹고, 김치도 안 먹..
[좋은수필]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 고임순 때로 우리는 낯선 땅을 밟고 그곳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잠시 나를 잊을 때가 있다. 강, 달 배, 숲, 시가 있는 풍경, 분강촌汾江村의 하루가 그러했다. 마치 5백 년을 거슬러올라간 듯한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聾巖) 종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