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616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딱새의 육추(育雛)일기 / 장돈식 딱새의 육추(育雛)일기 / 장돈식 나의 서재는 2층에 있다. 남으로 난 창은 넓고 베란다가 달려 있다. 지난겨울은 눈이 깊어 산새들이 먹이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이 베란다에다 들깨, 좁쌀, 옥수수 가루, 기장쌀 따위를 놓아 주었더니 꽤나 많은 새들이 날아들었었다. 봄이 되자 그 새들은 제 갈 곳으로 다 갔는데, 딱새 한 쌍은 집 근처를 떠나지 않았었다. 딱새는 참새만 한 작은 텃새인데 수컷은 정수리에서 뒷목까지는 은백색이고, 멱, 윗가슴은 검다. 배는 붉은 갈색이고 날개는 검은 아름다운 새이다. 암컷은 연한 갈색이다.올봄에는 서재의 구조를 약간 바꿀 일이 있어 일꾼들을 대고 공사를 시작한 것이 지난 5월 15일부터였다. 어찌나 먼지가 나는지 며칠을 창문을 열어놓고 일을 했는데, 공사가 다 .. [좋은수필]골목 / 최민자 골목 / 최민자 골목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휘황한 네온사인도, 대형마트도, 요란한 차량의 행렬도 없다. '열려라 참깨!'를 외치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나, 제복 입은 경비원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 내리는 고층 빌딩도 눈에 띄지 않는다. 길목 어름에 구멍가게 하나, 모퉁이 뒤에 허름한 맛집 하나 은밀하게 숨겨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일상의 맥박삼아 두근거리는, 웅숭깊고 되바라지지 않은 샛길이어서 좋다.골목은 자주 부끄럼을 탄다. 큰 줄기에서 뻗어 나와 섬세한 그물을 드리우는 잎맥과 같이, 골목도 보통 한길에서 곁가지를 치고 얼기설기 갈라져 들어간다. 하여 골목의 어귀는 대충 크고 작은 세 갈래 길을 이루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골목들은 입구 쪽을 어수룩이 숨겨두기를.. [좋은수필]두부과자 / 김지희 두부과자 / 김지희 전통찻집에서 보이 차에 곁다리로 두부과자가 나왔다. 군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그날만큼 두부과자는 구원군이었다. 정사각형의 하얀 옷에 작은 이모티콘 눈웃음을 닮은 구멍들, 바삭바삭했다. 주인장 눈치 없이 바지런히도 만지작거렸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후에 만난 친구와의 어색한 자리에 뚜쟁이가 되어주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더듬어 생각해도 아슴푸레하다. 두부과자의 매무새만, 눈으로 먹고, 손으로 먹고, 입으로 먹었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두부과자에 약이라도 넣었는지 심장의 쿵쾅대난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귀에까지 들렸다.의미 없는 이런저런 인사말들이 오가고, 알고 싶지 않은 일상 안부들은 귓등으로 흘리며 눈은 두부과자에만 주고 있었다. 오래전 기억들은 내내 목구멍에 막혀 .. [좋은수필]풋울음 잡기 / 노혜숙 풋울음 잡기 / 노혜숙 온몸에 맷자국이 흡사 꽃처럼 흐드러지다. 나자마자 메로 맞고 담금질 당한 신세 같지 않게 기품이 있다. 세상에 무슨 팔자가 평생 두들겨 맞으며 노래를 불러야 한단 말이냐. 그렇게 터득한 득음 덕일까. 제대로 곰삭은 징의 울음이 깊은 골을 휘돌아 나오는 바람 소리 같다.시작부터 너무 꼼꼼하게 살피는 바람에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세 시간째 혹사당한 눈이 슬슬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민속박물관 3층의 전시물 관람은 건성이었다. 대강대강 목례만 건넨 채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는데 홀연 생뚱맞은 이름 하나가 발목을 붙들어 세웠다. '풋울음 잡기'. 그 뒤로는 징이 적잖은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고 좌정해 있었다. 그와 더불어 한 시절을 풍미했을 징채도.. [좋은수필]싸리꽃 눈물 / 안귀순 싸리꽃 눈물 / 안귀순 숲은 회색빛 커튼을 드리우고 깊은 묵상에 잠겨 있다.운문재 계곡에서 밤을 새우고 첫새벽 뽀얀 안갯속을 더듬어 가지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하절기엔 아침마다 안개비가 내린다는 신비의 명산, 촉촉한 서정으로 빛나는 검푸른 잎새들 사이로 너울너울 춤추는 생성의 기운, 하늘, 땅, 나무와 사람이 한 덩이 운해雲海에 실려 둥둥 떠내려갈 것만 같다.오늘은 쌀 바위로 오르는 숲이 짙은 길을 택했다. 며칠 전 폭우가 할퀴고 간 탓인지 여기저기 무너진 산사태로 응달진 계곡은 양지가 되고, 볕 좋은 양지는 뭉텅 살점이 달아나 앙상한 뼈대가 드러난다. 어둠 속에 웅크린 세월 한 자락 질겅질겅 밟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마음속으로 중얼대며.늙은 상수리나무숲을 따라 가파른 고개 하나를 넘어.. [좋은수필]바람의 맛 / 유경환 바람의 맛 / 유경환 그곳의 바람은 다르다. 바람의 맛이 다르다. 햇볕의 결이 다르다. 그곳은 원미산 기슭 내 사는 곳이다.20여 년 전 경인전철이 개통되었을 적에 그곳으로 나갔다. 이른바 서울 탈출이다. 뻘건 진흙이 벗겨진 산의 생살이듯 군데군데 드러나 있는 산비탈의 체비지 몇 평을 샀다.나의 숲 그늘의 안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평당 기천 원씩의 투자는 효과가 있어서 정서적 안정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친구의 도움으로 집을 올릴 수 있었다. 자그마한 2층 집.뜨락은 넉넉히 잡았다. 담을 둘러 안마당으로 삼고 잔디를 깔고 담 밑엔 돌을 이리저리 놓고 그 사이사이엔 꽃과 풀을 꽂았다.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그리고 늘 푸른 나무들도 심었다. 삼 년이 지나자 뜨락이 아늑해졌다. 한창 초록이 .. [좋은수필]빛나지 않은 빛 / 반숙자 빛나지 않은 빛 / 반숙자 거실 벽에 액자 한 틀이 걸려 있다. 비록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작품에 어떤 예술 작품 못지않은 의미를 둔다.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액자에 있는 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가 있다. 아마도 글의 뜻이 매우 깊고 오묘해서 쉽게 이해하지를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액자에는 하얀 여백에 眞光 不煇(진광 불휘)라는 글씨가 두 줄 종으로 쓰여 있고 줄을 바꿔 賀 上梓(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상재를 축하하며)라는 글씨가 역시 두 줄로 있다. 다음은 여백을 넉넉히 두고 대나무를 그렸고 아래는 1986년 처서 절이라 쓰여 있다. 처음과 끝부분에 낙관을 찍었다.15년 전의 이야기다. 첫 수필집을 출간하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았다. 특히 출판을 맡아주신 출판사 사장님.. [좋은수필]여름 제사 / 은유 여름 제사 / 은유 시적인 게 뭐예요? 시 수업에서 질문이 나왔다. 난 오래된 시집에서 본 설명에 기댔다. "그 시적인 것은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선적인 것과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황지우, , 64쪽) 그리고 예를 들었다. '여름 제사' 같은 게 아닐까요?저 오늘 여름 제사 지내러 가요. 얼마 전 지인이 지나가듯 하는 말에 몸이 움찔했다. 여름 피서가 아니라 여름 제사. 이 빗나가고 거스르는 말들의 배열이 내겐 너무 시적으로 다가왔다. 삼복더위에 호화로운 휴가 한번 즐기지 못한 엄마는, 자식들 콩국수 만들어 먹이고 아버지 술안주로 부침개 부치느라 가스불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낑낑대던 엄마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써보지 못한 여권 사진이 영정사진이 됐.. 이전 1 2 3 4 5 6 7 ··· 770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