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2 (999)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가구 / 피천득 가구 / 피천득 도연명의 "허실유여한(虛室有餘閑)"이라는 시구는 선미는 있을지 모르나 아늑한 감이 적다. 물 떠먹는 표주박 하나나마 가지고 사는 디오게네스는 아무리 고답한 철학을 탐구한다 해도 명상하는 미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가구와 더불어 산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 [좋은수필]순환 / 류인혜 순환 / 류인혜 -고목도 꽃을 기다린다 음력설을 전후해서 며칠 동안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 밖에서 잠을 자던 노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아파트 맨 아래층에 사는 세대의 하수도가 얼었으니,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물을 내리지 말라고 연일 방송을 하고 있다. 세탁기를 .. [좋은수필]봉정사 단청 / 강별모 봉정사 단청 / 강별모 단청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고궁이나 사찰에 가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공부하게 되었다. 붉을 단(丹) 푸른 청(靑)을 단청이라고 하는데, 어찌 붉고 푸른색만 있겠는가. 백의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온갖 색을 동원해 그려낸 그림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 [좋은수필]아웃 오브 아프리카 / 정성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정성화 이삿짐을 싸다가 옛 일기장을 발견했다. 분명히 내 글씨인데도 마치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페이지가 있었다. “오늘은 그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고 왔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보게 되다니…. 아무리 .. [좋은수필]고래사냥 / 류영택 고래사냥 / 류영택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보였다. 이 녀석이 왜 이런 낯빛을 하고 있지? 며칠 전 아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전문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돈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못해서도 아니다. 나는 아.. [좋은수필]벽난로 / 김정순 벽난로 / 김정순 미국으로 온지 이십 여일이 되었을 때였다. 짐 정리도 대충 끝이 나고 아이들 학교도 입학이 허락되었고 정착해 살아갈 모든 절차도 마무리 되었다. 어디를 간다는 말도 없이 딸은 혼자 눈 속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돌아온 딸의 손에는 불쏘시개용 장.. [좋은수필]포대기 / 이혜경 포대기 / 이혜경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큰엄마는 기어이 봉투를 밀어 넣었다. “애 낳을 때 못 와서 미안하다. 이걸로 포대기라도 하나 사라.” 물기 오른 눈빛 앞에서 힘껏 뿌리치던 손이 스르르 풀리고 말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품고 다녔으면 각진 모서리가 둥글게 닳았을까. 빈 봉투를 .. [좋은수필]연 / 곽흥렬 연 / 곽흥렬 무릇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첫 경험은 오래 기억의 창고에 갈무리가 되는가 보다. 특히나 그것이 한창 감수성 강할 때 겪은 일이라면. 학창 시절의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던 듯싶다. 그때 무슨 일로 해서인가 교외로 나갔다가, 줄기까지 다 말라 허물어진 연밭..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