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3 (100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젊음을 훔치다 / 이귀복 젊음을 훔치다 / 이귀복 생선을 손질하여 냉동실에 저장하려는데 내용물이 꽉 찼다. 내친 김에 냉장고 청소나 하려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기 시작하자 비닐 뭉치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가족들 간식으로 얼려 둔 찰떡에서부터 지난 연말 지인이 보내준 옥돔 몇 마.. [좋은수필]화투 / 임병숙 화투 / 임병숙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햇살이 여과 없이 스며들었다. 두텁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각질 같은 먼지가 빛살에 실려 부유물처럼 떠다니고 있다. 보호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바람이 지나간 듯 휑뎅그렁하다. 방 안에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어머니의 입.. [좋은수필]달빛 냄새 / 구활 달빛 냄새 / 구활 물질에서만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 느낌에서도 냄새가 난다.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체취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따뜻한 정과 순후한 인품을 느낌으로 말할 때 가끔씩 냄새를 차용해 온다. 나는 맘에 드는 절집에 가면 달빛 냄새가 나는 듯.. [좋은수필]모과처럼 / 정경희 모과처럼 / 정경희 흙냄새가 그리울 때가 있다. 평안과 쉼의 향기 때문이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 묻힌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래서 죽어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이 세상에서 썩지 못하고, 사라지지 못하고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는 것만큼 끔찍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 [좋은수필]빛과 거울 / 법정 빛과 거울 / 법정 오후의 입선入禪시간, 선실禪室에서 졸다가 대숲에 푸실푸실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혼침昏沈에서 깨어났다. 점심공양 뒤 등 너머에서 땔나무를 한짐 지고 왔더니 고단했던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바람 끝은 차고 산골에는 이따금 눈발이 흩.. [좋은수필]못 / 이금태 못 / 이금태 깊고 푸른 수변공원 저수지물이 거대한 아파트 불빛을 삼킨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 시간이 잠긴다. 잠시 스쳐가는 인연들이 저 물속에도 있으리라. 밤이 찾아오는데도 생명체들의 몸짓이 분주하다. 세월의 등에 밀려오는 여름의 그림자. 올 한해도 무척 더울 것 같다. 후두둑 .. [좋은수필]받아쓰기 / 엄현옥 받아쓰기 / 엄현옥 열차가 검암역을 출발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서울역을 거치는 KTX 경부선이었다. 아라뱃길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질 즈음 통로 반대편 좌석이 소란스러웠다. 볼이 통통한 아이는 안경테 장식이 화려한 할머니가 건네준 휴대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끝내고 할머니.. [좋은수필]시루 / 이정연 시루 / 이정연 성묫길에 들른 고향집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퇴락해 가고 있다. 폐허나 다름없는 집 둘레를 돌다보니 보이는 풍경마다 다 눈물겹고 무너져 내린 흙에 반쯤 덮인 샘물은 지치지도 않고 새어나와 고추밭이 된 마당을 온통 적시고도 골목으로 넘쳐흐른다. 마치 잃..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