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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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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나누고 싶은 향기 / 송재옥 나누고 싶은 향기 / 송재옥 벌써 가을인가. 깊은 밤에 듣는 귀뚜라미 소리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뒤척이다 다시 불을 밝힌다. 눈에 들어온 것은 황지우의 시집이다. 나는 그것을 뽑아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시집을 펼 생각을 못한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좋은수필]무기와 악기 / 김은주 무기와 악기 / 김은주 무기와 악기는 한 집에 산다. 도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서로 버거워 하면서도 또한 떨어질 줄 모른다. 부엌과 건너 방의 한랭 전선은 식구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나란히 목욕 바구니를 들고 장수 목욕탕으로 나설 때면 봄 햇살아래 ..
[좋은수필]몸시詩 / 이은희 몸시詩 / 이은희 아이들이 후미에서 와글거렸다. 달려가 보니 말라죽은 나무 앞이다. 뭉툭하게 잘린 표면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한 아이가 다가가 손가락으로 왼쪽 구멍을 후벼댄다. 마치 자신의 콧구멍을 후비는 양 얼굴을 찌푸린다. 지켜보던 애들이 까르르거린다. 나무에 돌기..
[좋은수필]복숭아씨 / 박혜자 복숭아씨 / 박혜자 과일가게 주인이 맛보라며 복숭아 한쪽을 준다. 토실토실 살이 올라 단 냄새를 물씬 풍기던 복숭아는 살을 다 발라내자 씨만 남았다. 주인이 복숭아씨를 휴지통에 던지고는 복숭아 한 개를 또 깎는다. 복숭아씨가 맨 몸으로 휴지통에 웅크리고 있다. 평생 땅 한 뙈기 가..
[좋은수필]아들의 방 / 강여울 아들의 방 / 강여울 아들의 방에는 남으로 창이 나 있다. 창 밑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어 사철 아이의 방을 들여다본다. 온 식구의 관심을 받아서 인지 같은 때 심어진 주변의 은행나무들 보다 훨씬 무성한 잎을 오래 단다. 때문에 온 식구가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방이 아들 방이다. ..
[좋은수필]르느아르의 손 / 송복련 르느아르의 손 / 송복련 손을 보면 표정이 다양하다. 그 사람의 이력서처럼 삶을 짐작케 한다. 무용수가 허공에 그리는 손짓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사무를 보든지 호미와 낮을 들고 밭일을 하는 농부의 손은 다르지 않던가. 내가 감동 받았던 손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아담의 ..
[좋은수필]조화(調和)와 화쟁(和諍) / 권화송 조화(調和)와 화쟁(和諍) / 권화송 서정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신라초』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정서의 연원을 신라정신에서 구하고 있다. 전생․차생과 후생의 삼세 인연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영원주의를 시로 형상화 하고 그것을 우리 한민족의 뿌리로 이어..
[좋은수필]사막을 찾아 / 반숙자 사막을 찾아 / 반숙자 모래벌판을 달리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폐뿐인 땅을 예닐곱 시간 달리다 보면, 나를 들여다보다 지친 끝에 낯선 사람에게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은 목마름을 느낀다. 이 사막은 캘리포니아 주 남부 시에라네바다 산맥 남쪽에서 콜로라도 하곡으로 뻗어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