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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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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꽃 진 자리 / 장미옥 꽃 진 자리 / 장미옥 이른 아침, 뒤뜰에 하얀 꽃비가 내린다. 매화는 꽃 지는 모습마저 곱다. 꽃샘바람 냉기를 타고 나비처럼 허공에 유유하다 자늑자늑 땅으로 내려앉는다. 떠날 때를 알고 제 갈 길을 찾는 매화의 홀연한 발걸음이 마음 한 자락을 붙잡는다. 꽃잎인들 아픔이 없을까. 꽃잎..
[좋은수필]기다리는 여심(女心) / 윤명희 기다리는 여심(女心) / 윤명희 불에 댄 듯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사이에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머릿속이 휘황하다. 깔린 이부자리는 자리의 주인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보이려는 듯 얌전하다. 조금 전, 1시를 가리키던 시계가 2시를 막 지나고 있다. 전화기를 들어 귀에 대어본..
[좋은수필]좌불안석(坐不安席) / 노덕경 좌불안석(坐不安席) / 노덕경 오는 O월 OO일은 대학수능시험이다. 시험 날만 되면 으레 기온이 내려가 몸과 마음까지 움츠리게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얼어붙어 있는데 수험생과 부모들은 가슴을 조인다. 전 국민이 시험을 치르듯 귀와 눈이 수험장에 쏠리고 있다. 수능일 까지 얼마..
[좋은수필]인생의 캔버스 / 박연구 인생의 캔버스 / 박연구 자습이라는 것도 학습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런데 나는 모 신문사 문화센터 '수필반'을 지도하고 있은 지가 5년이 넘었으면서도 자습 한번 시키지 않았다. 자습은 선생의 무성의한 수업 방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강 기간은 3개월 단위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
[좋은수필]이 오줌통 / 이애용 부엉이 오줌통 / 이애용 지루한 장마가 거치고 모처럼 햇살 좋은 아침.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책길에 올랐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터키석을 닮아 파랗게 눈이 시리다. 소나무 사이로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차오른다. 순간, 소나무 가지에 파인애플처럼 달린 옹이가 회향(懷鄕)처럼 ..
[좋은수필]발걸음 소리 / 최원현 발걸음 소리 / 최원현 사람에게 있어서 숨소리 목소리는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소리다. 그런데 거기에 발걸음 소리도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뼉처럼 의도적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발걸음 소리는 숨소리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이라면 내지 않을 수 없는 소리이기 때문..
[좋은수필]흑국석(黑菊石) / 정여송 흑국석(黑菊石) / 정여송 돌이 꽃을 피웠다. 깊은 땅 속의 열과 압력은 신라 아사달의 혼을 빌려와 하얀 돌에다 검은 국화꽃을 새겼다. 숨결도 맥박도 뛰지 않는 차디찬 무생물, 그것에서 열과 피가 흐른다. 수천 수억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돋을 새김의 낙관이다. 태고의 정적마저 감..
[좋은수필]문 / 김상태 문 / 김상태 인류는 언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동물들도 다니는 길이 있는 것을 보면 인류도 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잘 것 없는 미생물도 가는 길이 있는 것을 보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은 모두 길을 만들 수 있고, 길을 인식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