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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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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수구초심(首邱初心) / 맹난자 수구초심(首邱初心) / 맹난자 바람이 분다.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잎새 한 장이 발 밑에 와 떨어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제 곧 추위가 오리라. 솜옷을 입고 연탄을 들이고 김장을 걱정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가슴에 신호를 긋고 지나가는 한파는 미리부터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
[좋은수피]아랑이와 몽실이 / 오세윤 아랑이와 몽실이 / 오세윤 산책길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단골로 가끔 가는 오리구이 집주인 아주머니가 기르는 백구가 새끼를 낳았다며한 마리를 덥석 안겨주는 바람에 엉겁결에 받아가지고 왔다. 순백색 털에 까만 눈동자를 한 한 달 배기,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그 집 앞을 지..
[좋은수필]고향 / 루신 고향 / 루신 1. 20여년과 2천여리 나는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2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20여 년 동안이나 떠나 있었던 곳이었다. 마침 한겨울이라 그런지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하늘은 잔뜩 찌푸렸고, 차가운 바람이 선창 안에까지 윙윙 소리를 내며 불어닥쳤다. 바..
[좋은수필]수필은 내 삶의 지침서 / 김재희 수필은 내 삶의 지침서 / 김재희 어느 산골짜기 바위틈에 새치름히 피어 있는 구절초가 눈길을 잡습니다. 찬 이슬 살짝 내리기 시작하는 때에 피는 구절초의 꽃잎은 코끝이 싸한 향기를 품고 있지요. 건드리면 툭 터질 것 같은 울음방울을 안고 있는 듯 모습이 참 애잔합니다. 구절초 속에..
[좋은수필]비상 대기 중 / 이길영 비상 대기 중 / 이길영 퇴근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휴대전화기가 울린다. “약속한 것하고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요양보호사가 시간도 안 지키고 일찍 가버리고 생색이나 내고 밥 갖다 주기 싫어서 빵이나 사다주고 이러려면 그만 두이소.” 그리고는 철컥 전화가 끊어진다. 피곤..
[좋은수필]문창호지를 보며 / 김홍은 문창호지를 보며 / 김홍은 건강한 여인의 희디힌 치아처럼 차마 옥빛까지 띤, 눈 위에 아이들이 그림과 글씨를 쓰고 있는 창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감나무 잎을 지필로 사용하였다는 정건鄭虔이라는 옛 사람의 지헤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따 넣은 단풍잎 등이 아직도 남..
[좋은수필]사자신충지충 / 맹난자 사자신충지충 / 맹난자 사자신중지충獅子身中之蟲은 '사자 몸 속에 있는 벌레' 라는 뜻이다. 이것은 불서《범망경梵網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물의 왕인 사자를 감히 어느 짐승 따위가 해하려 들며, 감히 먹어 치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자가 죽어 시체가 되면 그 시체를 말끔히 먹..
[좋은수필]애곡의 농담 / 주인석 애곡의 농담 / 주인석 지신밟기를 보면 인간과 신의 경계가 느껴진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이쪽 세계의 인간과 함부로 나올 수 없는 저쪽 세계의 신이 묘한 교접을 하는 것 같은 감응이 인다. 구성진 가락에 절절한 소리가 그 경계를 허문 것일까. 신의 영역으로 미친 듯이 들어가는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