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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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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선풍기 / 임경희 선풍기 / 임경희 나의 방에는 회전할 때마다 다그락 소리를 내는 낡은 검정색 선풍기가 있다. 내가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을 타서 샀으니 아마도 나이가 서른 살이 넘었으리라. 회전날개도 겨우 3개만 붙어있는 소박한 선풍기다. 아래 몸체에는 회전 조절용 스위치 한 개, 속도 조절과 정지 ..
[좋은수필]복어와 북어 / 주인석 복어와 북어 / 주인석 연일 속이 더부룩하여 해장국을 먹고 있다. 해장국은 술을 과하게 먹은 사람들의 술기운을 풀기 위한 국이다. 아직까지 술 먹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 해장국은 나와 거리가 먼 음식이다.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평소 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내가 연이어 해장국을 ..
[좋은수필]사투리 / 정목일 사투리 / 정목일 사투리는 그 지방만이 가진 독특한 맛과 개성이 있다. 사투리는 산, 들판, 강이 키운 말의 표정이다. 그 표정 속에 자연의 모습이 담겨 있고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심이 배어 있다. 보는 사람들마다 속사정을 훤히 알아 얼굴 표정을 보거나 몇 마디 말만 나누면 마음까지 ..
[좋은수필]수도꼭지 / 정희승 수도꼭지 / 정희승 침묵은 부패하기 쉬운 질료다. 밀폐된 방안에 너무 오래 괴어 있으면 쉽게 상한다. 오랜 세월 홀로 살아온 노모는 눅눅하고 퀴퀴한 침묵을 체질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늘 물방울이 떨어지도록 수도꼭지를 헐겁게 잠가 놓는다. 똑 똑 똑….반향을 일으키며 규칙..
[좋은수필]도둑님 신발 / 류영택 도둑님 신발 / 류영택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딸아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입이 뾰족하게 튀어나오면 이유라도 물어볼 텐데.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홀쳐맨 할머니 쌈지주머니처럼 입술이 뒤집어져 있는 걸 봐서는 물어도 쉬이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입술을 내밀고 아내..
[좋은수필]육십 촉 전구 / 김은주 육십 촉 전구 / 김은주 며칠 전부터 몸 구석에 검은 띠를 두르는가 싶더니 끝내 숨이 멎었다. 요 며칠 조짐이 좋지 않았다. 영 희뜩하니 밝지 않고 가끔은 푸르르 떨 듯 빛의 균열이 심하기도 했다. 전류의 영양을 영 받아들이지 못한 듯 어둑하더니 예고도 없이 화장실을 어둠으로 몰아넣..
[좋은수필]흰 고무신 / 김여진 흰 고무신 / 김여진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띄는 신발이 있다. 고무신은 나에게는 편안함을 준다. 옛날이 그리워서일까. 흰 고무신을 신고 있으면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다. 일하다 흙으로 더러워진 신발을 벗어서 비누로 뽀얗게 닦으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시원한 물로 세수한 것처..
[좋은수필]굄돌 / 윤경화 굄돌 / 윤경화 팔월 하순에서 구월 초순이 되면 야생이 숨 쉬는 풀숲이나 척박한 길바닥까지도 겉모습과는 달리 생명의 기운이 분주하다. 마라톤의 후미그룹같이 뒤처진 생명들이 마무리 노래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식물은 눈만 떠도 씨앗을 달고 벌레는 결미의 가락을 엮는다. 그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