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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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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노송 세 그루 / 김규련 노송 세 그루 / 김규련 오늘도 학산을 돌고 있다. 밤새 뿌리던 비는 멎고 햇살이 눈부시다. 요 얼마 동안 길섶을 지날 때마다 텅 빈 숲에서 소곤소곤 분주한 움직임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산은 어느덧 연초록 비단으로 속살을 가리게 됐다. 한 삼 년 거의 매일 똑같은 산길을 거닐다 ..
[좋은수필]구두 / 정경자 구두 / 정경자 벗어놓은 구두에도 표정이 있다. 작고 하찮게 생각하는 신발에도 주인의 삶의 방식이나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첫 대면일수록 인상은 참으로 중요하다. 첫인상이라면 흔히들 얼굴이나 옷차람일 떠올린다. 얼굴이나 옷차림이 의도된 것이라..
[좋은수필]흔들리는 것들 / 이은희 흔들리는 것들 / 이은희 "우리는 얼마나 흔들리는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이는 성 프란시스가 자신의 깨달음을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하루는 하인이 우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물을 길을 때마다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물을 가득 채운 후 끌..
[좋은수필]개구리 첫국밥 / 남민정 개구리 첫국밥 / 남민정 포도밭이 보이는 넓은 들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나 보다. 포도나무 가지에는 새싹이 보이지 않는다. 삼월이 지나야 잎이 돋아나는 것일까. 아침부터 나무를 심느라 지친 남편은 느티나무 아래의 돌 위에 앉아 밀짚모자를 벗는다. 바지는 흙투성이다. 몇 해 전, 경..
[좋은수필]미조(迷鳥) / 조이섭 미조(迷鳥) / 조이섭 예쁜 새 한 마리가 텔레비젼 화면에 나타났다. 녹황색 날개 무늬에 눈 앞뒤로 검은 실선이 그어진 노랑배솔새였다.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지내다 여름에 중국 남부로 이동해 번식하는 철새인데, 수백 킬로미터 벗어난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
[좋은수필]털신 한 켤레의 정물 / 김애자 털신 한 켤레의 정물 / 김애자 눈발이 분분한 저녁 답, 가쁜 숨을 몰아 사천왕문 안으로 들어서니 북을 두드리는 스님의 장삼자락이 희뜩희뜩 날파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때때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갈애渴愛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미망을 떨쳐내려는 듯 북채를 잡은 젊은 승려의 손길..
[좋은수필]글의 길 / 박양근 글의 길 / 박양근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가 나를 찾아오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찾아 나서는 경우다. 친구가 찾아오든, 내가 나서든 서로 만나는 기쁨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쁨의 정도가 다르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 찾아 나설 때 ..
[좋은수필]가죽나무 책상 / 홍성학 가죽나무 책상 / 홍성학 방문을 열자 공부하는 냄새가 눈과 코를 자극하며 가슴에 확 달라붙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교수는 방 한가운데 널따란 책상을 맞대고 책 속에 파묻혀 정신이 없다. 바깥공기의 유입이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얼른 인사만 하고 나왔다. 공부방에는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