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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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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바퀴 / 장미숙 바퀴 / 장미숙 자전거가 푹 주저앉아 버렸다. 공사현장 옆 도로를 구르고 난 뒤였다. 뒷바퀴 타이어에서 쉭쉭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자전거가 묵직해졌다.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땅을 숫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날카로운 뭔가 바퀴에 구멍을 낸 게 분명했다. 타이어는 벌써 ..
[좋은수필]청첩장 / 이순형 청첩장 / 이순형 오늘 받은 청첩장의 봉투에서는 내 이름 빼면 아는 사람이 없다.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걱정에 친구들의 이름을 더듬어보고 각종 사회단체 명단도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수소문해서 겨우 알아낸 것이 졸업한 후 한 번도 보지 못한 고등학교 동급생이 보냈..
[좋은수필]토출 / 주인석 토출 / 주인석 나는 선짓국을 먹지 않는다.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짓국 비슷하게 생긴 음식만 봐도 식욕이 뚝 떨어진다. 특히 시커먼 덩어리가 보이는 음식은 아예 숟가락도 대지 않고 국그릇을 밀쳐놓는다. 그러다보니 국을 끓일 때도 단출한 재료로 맛을 내는 것을 좋아한다. 색깔도 ..
[좋은수필]거리의 악사 / 정선모 거리의 악사 / 정선모 며칠 전, 종로에 나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시인통신’에 들렀다. 골방 같은 그곳에 빽빽이 들어앉아 서로 무릎 맞대고 문학을, 군사정권을, 젊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신열을 앓던 예전의 친구들이 떠올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한 할아버지가 기타를 메..
[좋은수필]한 컷의 삽화 / 김애자 한 컷의 삽화 / 김애자 여름에는 나무가 산을 키우는 장성長成의 계절이라 하던가요. 의기양양하게 키를 높이는 나무들의 짙푸른 야생성이 눈부십니다. 당신께서 보내 주신 시클라멘도 한꺼번에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흰색, 분홍, 선홍으로 어우러진 열아홉 송이의 꽃이 저마다의 자태를..
[좋은수필]쉼 / 남홍숙 쉼 / 남홍숙 화려하지 않아 눈길이 갔다. 꽃잎 하르르 지지 않았지만 분명, 꽃이라 부르기가 민망했다. 뭇 꽃들은 잎이 돋기 전에 떠나야할 시간을 알고, 때 되면 꽃잎 하르르하르르 쏟지 않던가. 하지만 콩고물 같은 것을 아끼듯 밀어내는 뒤뜰 망고 꽃은, 잎이 돋았는데도 고요했다. 잎의..
[좋은수필]에로티시즘의 낮과 밤 / 구활 에로티시즘의 낮과 밤 / 구활 낮에 느끼는 애로티시즘은 시각적이고 밤에 느끼는 그것은 다분히 촉각적이다. 맞는 말이다. 낮에는 보이는 눈이 먼저 작전을 꾸미고, 밤에는 느끼는 손과 몸이 임무를 수행한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있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좋은수필]감나무 / 김계식 감나무 / 김계식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있다. 시멘트로 포장된 주차장을 제외하고 나무 한 그루 심을 만큼의 작은 공간을 벽돌로 테두리한 곳이다. 밭이라기보다는 화단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성싶다. 십여 년 전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집을 짓고 난 후 버린 모래와 쓰레기로 식물이 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