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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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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수업료 / 박경대 수업료 / 박경대 아내의 전화를 받고나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주차장으로 잠시 나와 보라는 말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동차는 패잔병처럼 서 있었다. 트렁크가 반쯤 접혀지고 뚜껑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자태가 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내는 멀쩡하게 보였지만 ..
[좋은수필]각시붓꽃 / 홍도숙 각시붓꽃 / 홍도숙 그해 유월 나는 각시붓꽃으로 환생한 엄마를 만나려고 회목리 가는 길섶에 있는 진펄밭에 매일 나갔다. 뾰족한 붓끝 같은 꽃 봉우리가 아득히 들리는 엄마의 웃음소리 따라 흔들리고 부풀려서 여기저기 터지느라 바빴다. 환생해서도 엄마는 역시 바쁜 것 같았다. 늪지 ..
[좋은수필]주례와 랑부 / 주인석 주례와 랑부 / 주인석 세상에는 짝을 이루는 낱말이 많다. 임금과 백성,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그리고 주례와 랑부라는 말도 있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축복 관계로 인연이 된 사람들이다. 임금은 백성에게 그 나라에 살도록 존재감을 주고, 부모는 자식에게 이 세상에 태어..
[좋은수필]미역 줄기 / 장미숙 미역 줄기 / 장미숙 밤새 몸을 푼 미역 줄기를 걷어내자 그릇 안에 소금이 한 주먹이다. 미역 줄기를 담고 있는 물은 숫제 소금처럼 짜다. 무슨 한이 그리도 많기에 이토록 짠 옷을 몸에 두르고 있었던가. 훌훌 털어버리면 가벼울 것을…. 나는 짠물을 따라버리고 깨끗한 물에 미역 줄기를 ..
[좋은수필]도다리 쑥국 / 김은주 도다리 쑥국 / 김은주 숨찬 겨울을 건너온 동백이 뚝, 하고 모가지를 꺾으면 통영으로 봄 마중을 간다. 이르게 핀 동백이 막 목숨을 다할 즈음 애쑥은 올라오고 도다리 몸에도 제법 살이 오른다. 얼어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애쑥은 아직 초록을 띠지 못하고 이파리 가득 솜털이 하얗다. 두 ..
[좋은수필]더듬이 / 한경선 더듬이 / 한경선 열무 한 단과 얼갈이배추를 샀다. 괜찮다고 하는 내게 노인은 굳이 덤으로 상추를 주섬주섬 담아 건넸다. 저물어 가는 길모퉁이에서 사람의 마음이 오고갔다. 김칫거리 간을 하려고 바삐 움직였다. 배추를 씻자니 달팽이 한 마리가 떼구르르 굴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
[좋은수필]사각지대의 앵무새 / 김영애 사각지대의 앵무새 / 김영애 동물원에 들어섰다. 뜨거운 햇볕 속 새장에 갇힌 초록 가슴의 빨간 머리 앵무새가 눈에 들어온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했던지 앵무새는 지친 표정으로 새장 한 구석에서 졸고 있다. 아프리카 푸른 정글에서 밀림의 자유를 만끽하던 새가 무슨 인연으로 사막..
[좋은수필]초록 광(狂) / 강경애 초록 광(狂) / 강경애 연초록이 서서히 산야를 물들이고 있다. 이때쯤부터 나의 내부는 들끓기 시작한다. 딱히 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초록을 열애하고 있는 나는 정신을 한군데 놔두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열애와 혼돈이 날개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든 좋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