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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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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천년을 빚은 흙빛 숨결 / 김민영 천년을 빚은 흙빛 숨결 / 김민영 넓은 뜰에 포개져 있는 옹기들이 어머니의 굽은 등만큼이나 선을 그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볕 좋은 날, 어머니는 장독 뚜껑을 열어 손가락으로 휘저어 장맛을 한 번 보고 햇볕이 담기게 열어 두었다. 큰 장 단지들 밑으로 나란히 줄 세워져 있는 작은 단지 ..
[좋은수필]똬리 / 장미숙 똬리 / 장미숙 동그란 중심이 참 옹골지게 생겼다. 그 작은 몸집으로 온 세상을 떠받쳤으니 어찌 야무지지 않겠는가. 이지러지지도, 모나지도 않은 동글동글 어여쁜 모양새는 맘씨 좋은 시골 아낙 같기도 하다. 소박하지만 단단하기는 또 어떤가.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부드..
[좋은수필]엄매 / 백금태 엄매 / 백금태 인터넷에 올라온 이탈리아 여인의 인터뷰 기사가 눈길을 끈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에게 일 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몸의 일부라도 떼어주겠다는 기사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서른여덟 살의 아들이 다시 웃음을 찾는다면 자신의 신장이라도 기꺼이 내놓..
[좋은수필]길 / 김희자 길 / 김희자 바람이 남도 길을 열어 준다. 먹장구름이 물러나는 하늘에서 봄볕이 내려와 반짝인다. 분분하게 떨어진 붉은 꽃에 마음이 머문다. 섬과 육지를 이어 주는 외길 위에 정겨운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길을 나선 사람들처럼 닻을 내린 선박이 휴식을 취하..
[좋은수필]연꽃 만나러 가는 길 / 도월화 연꽃 만나러 가는 길 / 도월화 초록빛 양산을 펼쳐 줄게. 8월의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뿜을 때, 넓은 잎사귀로 서늘한 그림자를 만들려고 해. 하얗게 꽃 등을 피워 줄게. 연못이 흙탕물처럼 어두우면, 환하게 연 등을 밝혀주리. 벽련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차가운 물속에서 나는 그 목소리..
[좋은수필]탱자나무 / 최성희 탱자나무 / 최성희 검붉은 피가 툭 터져 나온다. 묵직하게 억눌려있던 답답함이 순간 시원해지는 것 같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명치끝에 남아 있던 체증이 해소되고 있다. 손에 쥐고 있던 펜 모양의 사혈기가 스무 살 처녀의 손가락을 막 찌르고 나서 장한 일을 했다는 ..
[좋은수필]치명적인 오류 / 한경선 치명적인 오류 / 한경선 그는 짐짓 차가운 문자 메시지 하나를 툭 띄웠다. 힘이 없는 듯했지만 다분히 위협을 가하는 말투로 짧고 단호하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화면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내게 웬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거두절..
[좋은수필]고추밭 연가 / 장미숙 고추밭 연가 / 장미숙 어머니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푸른빛이 곰비임비 몰려오더니 어머니의 꽃무늬 모자를 안고 가벼렸다. 어머니를 숨긴 푸른빛이 내 주위에도 낭창거린다. 어머니가 사라짐과 동시에 수런대던 바람 소리도 잦아들었다. 어머니를 품은 자연은 어머니를 잠시 쉬게 하려..